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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발간
2005.12.27 23:30

히가시노 게이고 <비밀> ★★★★★

조회 수 4138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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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케와 나오코는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가족이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모나미(딸)와 함께 친정을 가던 나오코는 버스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달려간 헤이스케는 두 개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딸과 아내를 보고 오열한다.

의사가 말한다. 아내가 지금까지 숨쉬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고 딸은 이대로 식물인간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고. 절망이 극에 달하면 지금의 헤이스케같은 모습일까. 의사의 말을 실감하지 못하는 헤이스케의 표정은 그야말로 백치의 얼굴이다.

갑자기 아내 나오코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황급히 아내의 손을 잡은 헤이스케. 그제서야 아내는 안심했다는 듯 그리고 이게 마지막 만남인 것 마냥 경련을 멈추고 조용히 잠든다. 영원한 안식의 잠 말이다.

임종한 아내를 옆에 뒀지만 더이상 슬퍼할 수 만은 없다. 내 딸 모나미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 헤이스케는 빛나는 의지로 모나미의 손을 꼬옥 잡는다. 너만은 살아다오 라는 그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통한 것일까?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난 것처럼 헤이스케의 눈물을 맞은 모나미의 눈꺼풀이 조심스럽게 떠지기 시작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은 아내의 영혼이 딸의 육체에 빙의되어 대체 누구와 살고 있는지 혼란을 겪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딸의 몸을 가진 아내! 상상만 해도 만화같은 이야기다. 남의 몸과 뒤바뀌어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던 그 모습을 우리는 이미 만화와 영화같은 매체에서 익숙하게 써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비밀>은 좀 "심각"하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은 이제 부부관계를 어떻게 갖나? 하는데서였다. 비록 딸의 몸이지만 아내의 정신이라고 우기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갖는다면 심각한 근친상간의 패륜죄를 짓게 된다. 작가는 이 심각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분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답을 적어두지 않겠다. 건방지게 책을 읽어보시라 라고 말해야겠다. -_-;; 하지만 나로선 명쾌한 답을 얻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이런 심각한 문제에는 뾰족한 해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람난 콩가루 가족이 아닌 이상 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딸의 몸으로 바뀐 뒤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익숙히 봐왔던 것이다. 부부는 노심초사하며 남에게 들키지 않게 철저하게 연극을 하며 살지만 그래도 세 살 버릇 쉽게 못 버리듯이 순간순간의 실수로 읽는 독자들까지 간이 철렁하게 만든다. 여기서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이상한 문체에 딴지를 걸고 싶다. 너무나 뻔해서 낯간지러울 정도의 유치하고 시시콜콜한 서술은, 내가 심심하다 생각하는 또 다른 추리작가 아카가와 지로와 몹시 흡사하다. 매우 애석하고 유감스럽다.

어쨌든 모나미의 육체로 사는 나오코는 독자의 환상을 실현해주는 존재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 번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적 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발명 된 다 해도 결코 실현할 수 없는(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면 내가 두 사람이 되기때문에), 입이 귀에 걸리도록 행복한 상상을 나오코가 실현한다. 그녀가 선택한 새 삶의 모습은 조금은 현실적인 팍팍한 선택이라 조금 섭섭하지만 나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듯 싶다. 하지만 나는 건설적인 미래야 꾸밀수 있겠지만 '열심'히 할 보장은 없는 점에서 나오코와 다르다. -_-;

회춘(?)한 나오코와는 반대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헤이스케는 자신의 욕망(성욕,질투)에 괴로워 한다. 그리고 헤이스케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린다. 유족들 간의 회의에서 사죄하러 온 버스 운전 기사의 부인을 알게 되고 그녀의 미스테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여기서 작가는 소설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진실한 사랑에 대해 절묘하게 부각시킨다.

작가가 말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내가 이 작품에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은 점은 마지막 반전에 있다. 영화로도 개봉된 <비밀>의 반전이 궁금하신 분은 꼭 읽어보시라.(영화 평이 어땠는지 잘 몰라 꼭 책으로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반전을 절대 추측하지 말 것!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읽으시라. 그러면  마음이 아릴 만큼 '슬프지만 아름다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 뒤 다 재보고도 이 작품에 만점의 점수를 준다. ^^
  • carr 2005.12.28 00:04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누구인지도 모를 때, 여주인공이 이쁘다는 소문(-.-)만으로, 영화를 봐버렸습니다. 당시에는 반전을 너무 쉽게(영화적 특성상) 예측해서, 중요한 부분을 생각없이 흘려버렸던 기억이 나는데요..... 감상문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매력이란 마무리의 강도가 아닌 대단원의 애절함인 듯 싶네요.
  • 연꽃 2005.12.28 02:57
    저도 영화만 접했는데 원작이 추리소설이었군요..
    영화는 너무 실망스러웠는데 품평 글을 보고 원작을 접해보고 싶어졌습니다!
  • 나혁진 2005.12.28 11:20
    저도 엄청 울면서 본 작품이네요. 마지막 장면, 남자 주인공 헤이스케의 절절한 슬픔이 아직도 생생한 작품입니다.
  • maettugi 2005.12.29 03:57
    원작도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 jasmin85 2005.12.29 18:08
    (중복 질문)...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있나요??? 저는 아무래도 추리소설같지 않다는 선입견 때문에 아직 읽지 않고 있는데요... 독자리뷰나 작품전체 컨셉만 보면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을 만한 추리소설인가??? 하는 의구심....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로서의 역량은 인정함으로 분명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 맞나!! 싶어 아직 안 읽고 있거든요... 읽어신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 carr 2005.12.29 18:22
    애초에 게이고 같은 경우는 추리적 요소보다는 드라마적 요소가 더 강하죠. 그런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추리적 요소가 가장 적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carr 2005.12.29 18:23
    아, 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거나, 그에 버금가는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판타지 성격이 강한, 애정물이라고 보심 될 거에요.
  • 나혁진 2005.12.30 02:07
    게이고야 워낙 다채로운 장르를 쓰는 작가니까요. 윗님들 말씀대로 <비밀>은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당한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 나가는 부분이나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서 약간의 미스터리 터치가 느껴질 뿐이죠. 저도 일본어가 안되므로 보지는 못했지만 게이고의 초창기작은 거의 다 본격 추리물이라고 합니다. 본인은 '나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다'라고 노상 주장하고 추리작가로서의 프라이드도 강한 편이라고 하네요. 추리소설의 영역(?) 확대라는 측면에서 상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봅니다. 꼭 추리소설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비밀>은 꽤 재미있습니다. 추천드리고 싶네요.
  • carr 2005.12.30 03:34
    아, 초기작은 본격물이었군요. 역시 번역본으로만 평가할 일이 아닌 것 같네요.
  • 나혁진 2005.12.30 12:21
    저도 게이고 본격물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안타까워요. 읽어보신 분에 의하면 트릭은 당연히 좋고, 문장력도 여타 신본격 작가들(아야쓰지 유키토 등)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본격물을 쓴다고요. 읽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
  • carr 2005.12.30 13:31
    히가시노의 본격물이면 무조건 지릅니다.^^
  • 권일영 2005.12.30 14:31
    <백야행>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데카님에게 선물받은 <백야행> 단행본의 띠지에, 일본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낸 기타카타 겐조가 이렇게 적었더군요. "'미스터리에 있어서 이야기의 가능성의 새로운 지평을 연 기념비적 대작'이라고요. 그리고 그 아래는 교코쿠 나츠히코가 '거장의 걸작'이라고 적고요. 저는 <백야행>을 읽으며 우리식으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범죄소설' 정도로 봐야겠죠. 하지만 일본인들은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범위로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인들이 이야기하는 미스터리는 '추리'를 포함한 좀더 넓은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준이야 뭐 나라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요. ^^
  • 권일영 2005.12.30 14:38
    위의 나혁진 님 글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했다는 "나는 추리소설 작가다"라는 말은 "나는 미스터리 작가다"라고 수정해야 정확한 표현이됩니다. ^^
  • 권일영 2005.12.30 14:42
    carr님,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용의자 X의 헌신>은 매우 본격추리적 소설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현실적인 스토리죠. 그의 초기작들은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트릭과 수수께끼, 암호, 밀실, 폭풍의 산장 스타일 등이 등장하는 본격추리 작품들이 많습니다.
  • carr 2005.12.31 01:38
    아! 일본에서의 미스터리가 그런 의미였군요. 조금씩 의아해했던 부분이 풀리는 듯 하네요. 그리고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의 평범한듯하지만 스토리 상에 녹아든 트릭이 가히 일품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느꼈던 '이런 작가가 본격물을 쓴다면 물건이 나오겠군! 왜, 안쓰는 걸까?' 라는 생각이 현실화 된 것 같아 기쁘네요. 그러고보니 딕슨카의 본격물보다는 게이고의 본격물이 번역되기를 바라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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