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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발간
2018.08.18 14:57

크루얼티 - 스콧 버그스트롬

조회 수 18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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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미스터리에서 책을 지원받고 쓴 글입니다.

감상을 늦게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 * *


며칠 전에 리암 니슨이 비행기 추락을 막는 액션영화를 보고,

"리암 니슨은 맨날 자기 딸을 구하거나 남의 딸을 구하러 다니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거야 그렇다 쳐도, 그 리암 니슨이 어린 여자애한테 끈쪼가리를 주면서 "이건 마법의 리본이야. 이걸 갖고 있으면 비행기는 떨어지지 않아"라고 말하고

여자애는 눈물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 봐주기가 힘들었어요.

 

액션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여섯살짜리 여자애를 대체 얼마나 어리게 보고 있는 거냐. 진짜 여섯살짜리 여자애였으면 내가 저딴 헛소리에 장단 맞춰줘야하나 싶어서 저세상 피곤했을 텐데 싶었거든요.

 

애들은 액션영화가 묘사하는 것만큼 어리지 않고, 마법의 리본 같은 헛소리는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한테 <크루얼티>는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납치되는 초반부까지는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인 그웬돌린은 세상의 모든 게 미운 사춘기 여자애인데,

질풍노도의 십대 특유의 울화통이 서술에 그대로 들어가 있어서 몇 쪽 읽다 덮길 반복했습니다.

 

외교관 아빠 덕에 뉴욕의 비싼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화날 일이 있으면 프랑스어로 욕하고, 까뮈를 인용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쌍한 십대 여자애 주인공한테...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거든요.

 

(이 울화로 가득 찬 서술은 중후반으로 가면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납치돼서 그웬돌린이 힘들어할 때도 저는 니에니에~~ 싶었고,

스파이 훈련을 받게 되는 것(궁금했던 부분이에요)도 심드렁했는데,

중반 즈음부터는 푹 빠져서 끝까지 단숨에 읽었어요.

 

열여섯쯤 된 여자아이가, 아빠를 구하기 위해서 스파이로서 활약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현실성 없는 설정이잖아요.

 

톰 크루즈가 핵폭탄을 터지기 0.1초 전에 멈추고 세상을 구하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재밌긴 해도 현실성은 없듯이,

저도 그런 장르적 재미만 기대하며 <크루얼티>를 읽었는데

 

그웬돌린이 부딪히는 장애물과, 그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식은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어요.

 

포주에게 얻어맞는 매춘부를 구해줬더니 그 매춘부가 욕을 하며 '세상은 이런 놈들로 가득하다, 다음에는 다른 놈이 온다,' 라며 그웬돌린을 쫓아내는 부분에서는 그웬돌린만큼이나 저도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현실성은 됐으니까 어쨌건 여자애가 무쌍을 찍는 걸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집은 거고, 이 책은 그렇게 끝이 날 텐데

중반에서 작가한테 '나쁜놈 한둘쯤 무찔러 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아, 얘가 하는 짓은 다 헛수고야.' 라고 한 소리 들은 기분이었거든요.

 

개인적인 복수나 정의실현에는 한계가 있고,

아버지를 구해봤자, 나쁜 놈을 처단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장르물을 단숨에 허무하게 만드는 말을 대놓고 하면서 스콧 버그스트롬은 끝까지 이 문제를 붙잡고 갑니다.

 

저는 그래서 좋았어요.

현실성을 죄다 무시하고, 스파이 교육을 받은 여자애가 무쌍을 찍어버리는 액션물을 썼어도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굉장히 좋았어요.

 

의지할 곳 없는 여자애들한테 이 세상이 얼마나 지독한 곳인지가

여자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물에서 명명백백하게 다뤄지고 있고,

세상에 대한 염증과 분노로 가득 찬 그 여자애가 최선의 해결을 이뤄내는 과정이 화끈해서

결말까지 단숨에, 만족스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었어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새로운 인생에서, 그웬돌린은 계속 갈등하고 실수도 저지르면서 점점 더 위험하고 나쁜 상황에 뛰어들어요.

자신이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고, 똑똑하고 멋있고, 그리고 결국은 아버지를 구하는 것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딪히는데, 거기서도 최선의 결정을 내려요. 멋있는 주인공입니다.

 

물론 상황이 좀 쉽게쉽게 풀리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주인공의 성별이 리암니슨에서 그 딸뻘인 여자애로 단순히 반전된 것 이상의 책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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