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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발간
2006.05.18 14:56

히가시노 게이고 <변신>

조회 수 279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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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변신>

야간근무는 독서의 연속이다. 책을 읽지 않고선 이 긴 밤을 버텨낼 수 없다. 그렇기에 책도 신중히 선택 할 필요가 있다. 강약 중간약의 템포를 맞추는 식으로 잘 안 읽혀지는 책, 읽혀지는 책을 골고루 읽는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벵골 산 호랑이 리차드 파크의 안위를 걱정하며 책을 덮고 곧바로 게이고의 <변신>을 들었다. 생각했던대로 역시나 휴식과 독서를 동시에 가능하게 해주는...... 참 맘에 드는 작가다.

<변신>은 뇌 이식에 관한 소설이다. 부동산에 집 보러 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강도 때문에 준이치는 날벼락을 맞는다. 강도가 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준이치는 병실에서 곧 깨어난다. 그간의 기억들을 더듬더듬 찾는다. 아득히 멀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새 물밀듯이 밀려오고 준이치는 자신의 생존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러한 까닭은 준이치가 이제 막 죽은 싱싱한 뇌를 부분적으로 이식받았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선 이 사건을 십만분의 일의 기적이라 부른다. 졸지에 남의 뇌를 갖고 살게 된 준이치. 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식물인간 보다 이런 프랑켄슈타인의 인생이 훨씬 더 괜찮을 듯 싶다.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뇌"에 대해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미스테리한 필치를 도입한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게이고는 완전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온갖 상황을 다 끌어내면서 재미를 유도한다. 덕분에 400쪽이 넘는 이 긴얘기는 매순간 자경의 경지를 펼친다.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뇌를 이식받은 준이치는 이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물론 독자들은 이런 내용을 처음 만나는 게 아니다. 이미 몇 번 우려낸, 어떻게 말하면 이것만큼 진부한 소재 또한 없다. 이같은 경험으로 나는 처음에 준이치는 점점 자신을 주체하기 힘든 폭력적 인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시냐,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말이다.

예상은 조금 특이하게 빗나갔다. 물론 폭력적인 성향을 띠긴 했지만 무조건 하이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폭력적 성향과 또 다른 면모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렸다. 자신의 일에 무한한 정열을 품는 준이치가 된것이다. 작업에 있어선 최고의 농땡이를 자랑했던 준이치는 동료직원들의 나태한 작업태도를 질타한다. 눈이 동그래진 동료들. 공장안의 개선될 안건을 스무 건도 넘게 제출해 동료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왕따로 등극된 준이치는 자기 스스로도 어리둥절해하며,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며 술잔을 치켜든다. 앗! 그런데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술을 잘 마셨지? 자기가 자신을 못믿는 딜레마에 빠진 <변신>. 이제껏 이런 매력적인 소설이 있었던가?

간이라도 빼줄 것 같았던 메구미에 대한 사랑 앞에서 이토록 차갑게 식을 수 있는지. 준이치는 절망한다. 여기에 메구미의 비하인드 스토리인 일기가 부분 삽입되면서 소설의 비장미는 점점 더해간다. 도대체 누구 뇌를 섞어논거야!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 준이치는 원래 뇌의 제공자를 찾아나선다. 이때부터 소설은 두 번째 국면에 접어든다. 준이치가 이식한 뇌의 정체는......

당신이 무엇을 상상했던간에 그 보다 더한 걸 보여주고 마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래서 <변신>을 적극 추천한다.


p.300    "당신은 몰라. 뇌가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역시 특별해.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 오늘이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일 눈을 떴을 때, 거기에 있는건 오늘의 내가 아니야. 아득한 과거의 기억은 전부 다른 사람것에 불과해. 난 지금 그렇게밖에 느낄 수 없어.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것이 철저하게 무無로 돌아가고 있어. 그게 어떤 건지 알아? 내가 가르쳐주지. 그건......"

나는 그의 코끝에 검지를 들이댔다.

"그건 죽는다는 거야. 살아 있다는 건 단지 숨을 쉰다든지, 심장이 움직인다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 그건 발자국을 남긴다는 거야. 자기 뒤에 있는 발자국을 보고,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똑똑히 아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에 내가 남긴 발자국을 보아도 도저히 내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 20년 이상 살아왔던 나루세 준이치는 이미 어디에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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