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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13:02

아리아드네의 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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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 때 세줄 씩 써보고 있습니다.

전체 분량의 1/30도 안될 텐데;;;

그냥 증거 삼아 올려놓습니다;

반응 좋으면, 내년 안에 연재 끝내겠;; 쿨룩;

 

1

 

언제나 나의 아침은 창가 근처에 나란히 놓인 작은 화분 다섯 개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온 파리한 볕에 닿은 초록 잎들이 왠지 창백해 보인다. 화분 주인은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 하지만 물을 줘야 하는 가짓수만 다섯 개, 저 다육이들은 은근히 까다롭다. 다음은 옆에 있는 작은 수조 차례. 은은한 LED 조명 속에서 팔랑대는 이것들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보살피는 생명체들이다. 저 얼룩덜룩한 구피인가 뭔가는 꼬리를 살랑대는 폼이 귀부인 같다. 화분 주인 겸 수조 주인은 저것들은 다소 비싸기 때문에 자길 대하듯 하라고 했었다. 수조의 부분 물갈이는 어제 했으니 며칠 있다가 여과기 스펀지나 좀 짜줘야겠다. 마지막으로 복층에 있는 책장 차례다. 가로는 4미터, 높이는 2미터 정도? 8단짜리 책장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분 주인이자 수조 주인이며 책장 주인인 삼촌은 책등의 색깔별로 책을 정리해놓았다. 장엄한 무지개를 의도한 것 같은데 새까만 원서가 너무 많아서 그러데이션이 일그러졌다. 총채로 대충 털고 정전기 티슈로 먼지를 훔쳐냈다. 모든 게 끝 이제 온전히 내 시간만 남았다. 뭘 할까.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자취생이라면 입을 쩍 벌릴 만한 근사한 빌트 인 복층 원룸이다. 하지만 내 집은 아니고 사실 삼촌 집이다.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게 된 삼촌이 하릴없이 놀고 있는 나에게 매달 약간의 용돈과 함께 집 관리를 맡겼다. 집안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지 말라는 다짐과 함께. 이런 엄청난 횡재가 있다니. 내 나이도 이제 서른하나. 마땅히 하는 일도 없이 집에서 죽치기에는 실로 아슬아슬한 나이였다. 내 유일한 수입원은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사진 스튜디오에서 떨어지는 포토샵 작업이었다. 백수 시절, 노동부가 상냥하게 제안한 교육 과정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게 참 다행이었다. 고용 보험을 받게 되면 절로 애국심이 샘솟기 마련이다. 일단은 집에서 부모님 눈에 띄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밤늦게까지 게임 아이템이나 팔다가 낮 11시쯤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일어나는 날 보면 아마 예수나 부처라도 짜증이 날 것이다.

당연히 나는 삼촌의 부탁을 날름 받아들였다. 갓 독립한 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 몇 주는 너무 행복해서 자제심을 잃고 말았다. 건실하고 촉망받던 사회의 일원이 삶을 누리던 근사한 빌트 인 복층 원룸은 점점 하숙집으로 변했고 마침내 폐가로 바뀌어갔다. 집 밥으로 유지되던 내 얄팍한 건강도 과도한 나트륨 섭취와 수면 부족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육이 몇 개가 잎을 떨구고, 열대어 몇 마리가 수면 위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나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당시 삼촌은 한 달에 한 번씩 그날 신문을 들고 화분과 어항 등의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나 정도 실력이면 포토샵 보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양심은 결코 보정할 수 없었다. 사실 두려움도 있었다. 삼촌은 능히 CCTV도 설치할 만한 인간이었다. 증거를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나를 압박해 올 수도 있었다. 복층에 있는 책들도 대부분 추리소설이었다. 아무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삼촌 집에서 머무른 지 이제 6개월. 내 삶은 고요하면서도 무료하게 별 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어제처럼 늘어지기로 결심했다. 라면 하나를 끓이고 게임TV나 보기로 했다. , 새벽까지 해서 작업도 다 끝났겠다, 어쨌든 나트륨 힐링이 필요했다. 스프를 먼저 넣자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뻣뻣한 라면도 나처럼 무기력해질 필요가 있었다. 난 냉동 물만두 두 개를 넣어서 물의 온도를 떨어뜨렸다. 다 익은 라면 특유의 흐드러짐이 보이자 난 가스 불을 껐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부추김치를 통째로 들고 와서는 거실에 자리를 폈다. 라면 한 젓가락을 고개를 위로 해서 먹을까, 아래로 해서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총무님. 전화번호 여전하시네요?”

?”

나 기억 안나요? 로매.”

로매님?”

로매?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이야. 8, 9년쯤 됐나?

, ……. 참 오랜만이네요. 웬일이세요?”

스무고개요.”

로매, 그러니까 장섭이는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돌려 말하는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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