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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리 콘웨이는 들고 있던 신문의 6페이지를 펼쳤다.
  지난 주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 그 광고가 또 실려 있었다. 거의 반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었으며, 광고주는 「위탁 주주들이 하는 구조 위원회」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텍사스 개발 탐사 회사에 투자하신 주주 여러분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하신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이득을 보고 계십니까?
  요행히 한두 번 이득을 보게 해준 것 이외에 제리 콘웨이 회장이 여러분께 해준 것이 뭡니까? 그는 회사를 탄탄한 기초 위에 올려놓기 위해 이득을 축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콘웨이 회장이 경영에 실패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투자하신 돈에 대해서 이득을 차지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또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실 권리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투자한 돈에 대하여 10년이나 20년 후에 이득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 이득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시는 겁니다.
  「위탁 주주들이 하는 구조 위원회」를 맡고 있는 기포드 패럴에게 여러분들의 위임장을 송달해 주십시오. 기포드 패럴과 함께 이득이 불어나는 것을 지켜봅시다.
  패럴은 약속만이 아니라 결과를 보증합니다. 패럴은 기획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들은 백일몽(白日夢)을 꾸거나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행하셔야 합니다.


  콘웨이는 신문을 덮었다. 이 광고를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위임장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웨이는 속이 쓰렸다.
  「위탁 주주들이 하는 구조 위원회」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자신의 회사가 터키 산맥의 유정(油井)에서 거두어들인 이득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유정이 터져 나왔을 때, 콘웨이는 이익배당을 많이 해주고 주식 가격을 크게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그 대신 콘웨이는 터키 산맥의 유정만큼이나 큰 유정을 개발하는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이익배당을 보류했었다.
  기포드 패럴은 초장부터 이래저래 상반되는 견해만 내놓았었다. 마침내 중역회의에서 표결에 붙였고, 패럴은 패하여 축출되었다. 이제 그는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긁어모아 자신에게서 경영권을 박탈하려고 도전을 해 오는 것이다.
  누가 패럴의 배경일까? 누가 신문광고를 낼 수 있도록 뒷돈을 대는 것일까? 콘웨이는 알고 싶었다. 그걸 알아내서 반격을 하고 싶었다.
  콘웨이가 하고자 하는 마스터플랜은 조용히 비밀리에 수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콘웨이 자신의 계획이 조금이라도 누설되면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급격하게 줄어들 게 뻔했다. 자신이 획득하고자 하는 토지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콘웨이는 그 계획을 공공연히 밝힐 수가 없었다. 콘웨이는 주주총회를 소집해서 그 곳에서 계획을 밝힐 예정이었다. 총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대주주들은 아마도 자신의 계획을 지지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씩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어떨까? 주주들은 추상적인 계획보다는 구체적인 행동과 이익을 원하지 않을까?
  소액주주들은 자신을 지지할까, 아니면 패럴에게 위임장을 보낼까?
  주주명부를 분석해 본 결과,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얼마든지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패럴에게 소액주주들이 위임장을 보낸다면 곧 경영권을 탈취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만약 패럴이 이렇게 교묘하게 광고를 하고서도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60 퍼센트 이상 긁어모으지 못하고, 나아가 주주총회에서 콘웨이 자신을 믿고서 대주주들이 지지를 해준다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려면 두 가지의 전제조건을 어쨌거나 충족시켜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었다.
  콘웨이는 신문을 내려놓고 사무실의 전등을 끈 다음 사무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콘웨이는 즉시 전화를 들었다. 요즘에는 모든 전화를 비서를 통하지 않고 콘웨이 자신이 받고 있었다. 혹시 뭔가 설명을 듣기를 원하는 소액주주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전화를 걸어 온 대부분의 소액주주들은, 회사가 원유 매장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토지를 곧 취득하려고 하지만 이것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힘들다는 콘웨이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투자자들이 1년 전에 산 주식은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는 것도 설명했다. 기포드 패럴은 이것이 콘웨이의 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콘웨이는 이 말을 비웃으면서 인용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을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면 더 많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발생해서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기포드 패럴의 패거리들과 어울린다면, 회사를 그 패거리들이 말아먹을 것이라고도 설명을 했다.
  그래서 콘웨이는 수화기를 들었다.  
  “제리 콘웨이입니다.”
  상대방 여자의 목소리는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이 나지막하고 끈적끈적하게 울려 퍼졌다. 콘웨이는 그 목소리를 이전에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콘웨이 씨, 저와 빨리 좀 만나 주셔야겠어요. 당신에게 크게 도움이 될 중요한 정보를 제가 가지고 있거든요.”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제 사무실에 있겠습니다. 그러니…….”
  “아뇨, 아니에요. 저는 당신의 사무실에 갈 수가 없어요.”
  “왜요?”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어요.”
  “그럼, 어쩌란 말인가요?”
  “저는 당신을 개인적으로 비밀리에 만나고 싶어요. 아무도 모르고,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장소에서요.”
  “어디 마음에 둔 장소라도 있으세요?” 콘웨이가 물었다.
  “물론이죠. 오늘 저녁에 선셋 대로(大路)에 있는 에이펙스 모텔로 가셔서, 혼자라고 하면서 본명(本名)으로 투숙하시고, 방의 불을 끄신 다음 방문을 열어 놓으세요. 그리고 기다리시면 자정쯤에 제가…….”
  “잠깐, 잠깐만요. 그건 안 되겠는데요.” 콘웨이가 말허리를 끊었다.
  “왜 안 되죠?”
  “제가 오늘 저녁에……, 음……, 다른 약속이 있거든요.” 콘웨이는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그럼 내일 저녁은 어떤가요?”
  “내일 저녁도 역시 안 되겠어요.”
  “제가 두려워서 그러시는 거예요?”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제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거든요.” 콘웨이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이것 보세요, 아저씨. 더 이상 길게 전화를 할 수 없어요. 전 저……, 로잘린드라고 해요. 로잘린드라고 불러 주세요. 당신을 만나 뵙고 싶어요. 당신이 자신을 보호하고 회사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제가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기프(기포드의 애칭)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위임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적으로 돌리면 매우 위험한 사람이라고요. 당신도 즉시 기프의 선동에 대항하는 작업을 시작하셔야 할 거예요.”
  “죄송합니다만, 저도 전화상으로는 논의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언론에 밝힐 수 없는 문제도 있고요. 어쨌든 모든 주주들은 무엇인가를 신뢰하면서 살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금전적인 면에서 큰 곤란을 겪게 되겠지요. 내가 회사의 경영을 맡았던 작년에만 해도 주가(株價)가 두 배로 뛰었거든요. 주주들도 계속해서 이익을 얻고자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오, 맙소사! 그런 엉터리없는 이야기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난 알고 있단 말이에요. 기프 패럴은 아주 악당이에요. 그와 그의 친구들은 회사의 경영권을 가로채서 회사의 자산을 조작한 다음에 싹 털어먹을 작정이에요. 저는 그를 조금도 믿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보신다면 제 말을 믿을 수 있으실 텐데…….”
  “그럼, 그 정보를 편지로 보내 줄 수 있나요?” 콘웨이는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안 돼요. 제가 이렇게 당신과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요, 하물며 편지라뇨?”
  “어떻게 위험하다는 거죠?”
  “뭐긴 뭐예요? 피살당하는 거지요.” 그녀는 화를 버럭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제리 콘웨이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책상에 잠시 동안 앉아 있었다. 전화상의 목소리는 뭔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극히 조심을 해야 할 때이다. 지난 두 주 동안에만도 대여섯 차례나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만일 모텔에 가서 방문을 열어 놓고 불을 모두 끈 채로 젊은 여자와 앉아 있는다면……,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안 돼! 그런 위험이야 무릅쓸 수가 없지……. 현시점에서 이런 좋지 못한 사실이 신문에 한 줄이라도 보도된다면, 경영권 싸움의 방향을 단번에 바꿀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콘웨이는 약 15분 정도를 더 기다린 다음, 전등을 끄고, 사무실 문에 방범 걸쇠가 제대로 걸리는 것을 확인한 다음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로잘린드는 다음 날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다음에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콘웨이의 비서가 말했다. “로잘린드라고만 이름을 밝힌 여자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요. 그렇게만 이야기하면 아신다고 하면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고 하는군요.”
  “전화를 받겠소.”라고 대답하면서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콘웨이 씨.” 또다시 아주 부드러운 로잘린드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난밤에도 느낀 것이지만, 어디에선가 들은 목소리지만 곰곰 생각해 봐도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로잘린드 양.”
  “당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요?”
  콘웨이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음……, 사람들이 내가 드나드는 것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쏟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요…….”
  “지금 유명한 탐정 사무소가 직원을 이용해서 콘웨이 당신을 미행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미행하는 직원을 추가로 더 늘린다고 하는군요. 정말,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충고, 고맙소.”
  “어쨌거나 당신을 저를 만나셔야 해요. 당신과 접촉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곰곰 생각해 뫘는데, 얼른 떠오르지 않는군요……. 지금 당신을 미행하는 자 중의 하나는 사립탐정인데요, 위험한 사람은 아니에요. 단지 일상적인 미행 업무만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은 베이커라는 놈인데, 아주 지독한 악당이에요. 오죽하면 ‘독가스실’ 베이커라고 불리겠어요? 그 놈을 주의하셔야 해요! 참 당신은 무기를 가지고 있나요?”
  “맙소사! 없소. 내가 무엇 때문에 무기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요?”
  “그러면 얼른 총기소지 허가증을 발급 받도록 하세요. 당신을 미행하는 탐정들을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주 교묘하게 미행하고 있으니까요. 베이커란 놈은 지금 번호판의 한 쪽이 찌그러진, 낡은 검은 색 차를 타고 미행하고 있어요. 그걸 발견한다고 해서 그 놈과 대적할 생각은 마세요!
  지금 당신과 대적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결사적이기 때문에 정당하게 싸우려고 하지 않아요. 당신은 회사의 경영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유지하려고 하고, 또한 그 선에서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 같은데요, 이 사람들은 그런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지 않아요.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저랑 연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서는 안 됩니다. 로잘린드란 이름을 알려 드린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제 말을 믿도록 하려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이름이라도 알려 드린 것이에요.”
  콘웨이는 생각에 잠겨 얼굴을 찌푸렸다.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 단서만이라도 좀 주셨으면 하는데요. 단서만이라도요!”
  “이것 보세요. 저는 당신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임장의 수량을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절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만 해주신다면 위임장을 보내 준 사람들의 명단도 알려드릴 수 있고요. 그렇지만 이런 정보가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비밀이 누설되었는지를 알게 될 거고, 저는 위험에 빠지게 되요.”
  “도대체 그 위험이란 게 뭐요? 만일 금전상의 문제라면 내가…….”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세요! 베이커가 추적하던 한 여자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여잔……, 오……, 아…….”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콘웨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백미러로 미행하는 자동차가 없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특별하게 눈에 띠는 자동차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위험이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콘웨이는 어떡하든 로잘린드를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녀가 말한 정보를 정말로 가지고 있다면, 그 정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패럴에게 위임장을 보낸 사람들의 이름을 알기만 한다면, 아직도 그 사람들에게 철회하라는 홍보를 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잘린드는 오후 2시 30분이 약간 지나자 또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보다 더 절박하고 애원하는 듯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당신이 사용할 수 있도록 꼭 전해 드리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회사는 파산하고 말 거예요.”
  “정확하게 뭘 원하는 거요?”
  “당신에게 정보를 드려서, 무엇보다도 먼저 패럴과 그 패거리들이 회사를 망치는 것을 막고 싶어요. 진실한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싶고요, 그리고 저……, 저는 복수를 하고 싶어요.”
  “누구에게요?”
  “마음대로 상상하세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를 대신할 사람을 보내서 당신을 만나게 하겠소. 그 사람은…….”
  그녀는 비웃듯이 낄낄거리며 웃더니 딱 잘라 말했다.
  “이것 보세요, 회장님.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은 당신, 즉 회사의 일인자와 직접 개인적으로 하려는 것이란 말이에요. 다른 어떤 사람도 믿을 수 없다고요. 당신이 저와 얼굴을 맞대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라면, 패럴이 당신에 대해 한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겠군요.”
  콘웨이는 결심을 하고서 급히 말했다.
  “15분 후에 다시 전화해 주시오. 요즘은 일정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15분 후에 다시 전화 줄 수 있겠소?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그러지요.“ 그녀는 약속했다.
  콘웨이는 비서를 불러들였다. “케인 양, 방금 전에 전화를 했던 아가씨가 15분 이내에 다시 전화를 걸어올 거요. 그녀는 극히 비밀리에 나와 만날 약속을 할 예정이요.
  그래서 당신이 이 통화를 다른 회선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정확하게 들은 대로 속기(速記)를 해주시오. 만일 필요하다면 통화 내용을 그대로 반복할 수 있도록 말이요.”
  에바 케인은 전혀 놀래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아주 냉정하고 능률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녀가 말하는 것만을 속기하면 되나요, 아니면 회장님과의 모든 대화를 다 속기해야 하나요?”
  “모든 대화를 다 속기하시오. 그리고 속기를 다하면 가능한 한 빨리 보통 문장으로 번역하시오. 만약 필요하다면 그 문장을 공증해 두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케인은 정중하게 대답을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15분이 지나도 전화가 다시 걸려 오지 않자, 콘웨이는 방안을 안절부절못하면서 걸어 다녔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콘웨이는 다이빙하듯이 책상으로 돌진하여 수화기를 집어든 다음 말했다. “여보세요?”
  비서의 아주 침착하고도 직업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아가씨가 전화를 해서, 회장님께서 기다리실 거라면서 바꿔달라고 합니다. 로잘린드 양이라고 하는데요.”
  “케인 양, 속기 준비가 다 되었소?”
  “예, 회장님.”
  “그럼, 전화를 돌려주시오.”
  로잘린드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콘웨이 씨?”
  “로잘린드 양이요?”
  “그래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당신과 꼭 이야기하고 싶지만, 뭔가 예방조치를 취했으면 좋겠소.”
  “무엇 때문에요?”
  “혹시 함정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녀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쯧……, 쯧……. 회장님! 당신은 결혼하지도 않았고, 애도 없으며, 서른여섯 살이나 되는 어른이에요.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도 함정 운운하며 몸을 사리시다니!
  오늘 저녁 5시 30분에 당신을 미행하는 사립탐정이 비번(非番)이 되요. 다른 사람과 교대를 하는 거죠. 그들은 서로 연락을 하지도 않고, 야간 미행자는 종종 늦곤 하죠. 오늘밤에도 약간 늦도록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각 5시 31분에 사무실을 나서서 차를 타세요. 선셋 대로(大路)를 따라서 서쪽으로 운전하다가 이바에 도착하면 우회전하세요. 신호등에서 직진 신호가 떨어져도 바로 출발하지 마시고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급발차를 해 버리세요. 가끔 가다 백미러를 보셔서 미행하는 차가 없나 살펴보시고요. 만약 꼬리가 붙었다면 떼어버릴 수 있겠지요?”
  “그리고는요?”
  “그럼, 지금부터 자세히 들으세요. 미행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선셋 대로(大路)와 라브레아 로(路)의 교차로에 있는 엠파이어 약국으로 가세요. 그 약국에는 전화박스가 세 개 있는데요, 문 쪽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세요. 정확하게 6시 15분에 전화벨이 울릴 텐데, 그 전화를 받으세요.
  미행자를 성공적으로 따돌리셨다면,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지시 받으실 거예요. 만약 미행자를 따돌리시지 못했다면 전화벨은 울리지 않을 거예요.”
  “일을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만약 당신이 뭔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콘웨이는 매우 짜증이 난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이것 보세요, 회장님! 이 일은 극히 조심해서 추진할 수밖에 없어요. 패럴에게 이미 위임장을 보낸 소액주주들의 명단을 원하기는 하시는 거예요?”
  “꼭 있었으면 해요.”
  “그럼, 와서 가져가세요.”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몇 분 후에 비서인 케인이 사무실로 들어와 콘웨이에게 타이핑된 종이를 건네주었다.
  “전화하신 내용의 사본입니다, 회장님.”
  “고맙소.”
  그녀는 뒤돌아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멈춰 서더니 갑자기 휙 돌아서서 그에게 다가왔다. “회장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콘웨이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말을 폭포같이 쏟아 냈다. 마치 그가 그만 두라고 막는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회장님께서는 회사 내에서 직원들이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갖는 것을 금지하셨죠. 따라서 회장님도 저를 회사의 부품 중에 하나로밖에 보지 않으시겠죠. 그렇지만, 저도 인간이에요. 회장님이 이 경영권 투쟁을 어떡하든 끝까지 치르고, 승리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그런데, 저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나타나는 뭔가를 알아낼 수 있거든요…….”
  그녀는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엔진이 연료가 떨어져서 갑자기 뚝 멈춘 것처럼 입술을 꾹 다물고 긴 침묵 속에 빠졌다.
  “내가 그렇게 비사교적인 사람이었던가?" 콘웨이는 항의하듯 말했다.
  "결코 그러신 것은 아니에요! 진정코 아니라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회장님께서는 단지 개인적인 일에 관심을 쏟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음……, 다시 말하면 모든 일을 사업적인 관점에서만 보신다는 거예요. 제가 비록 주제 넘는 참견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여자가 시킨 그따위 웃기는 일을 하셔서는 안 돼요. 제발요.“
  “왜지?” 그가 물었다.
  “그건 함정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함정인지 어떻게 알지?”
  “만일 그녀가 회장님께 드리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봉투 안에 그걸 넣고, 봉투 겉면에 회장님 성함을 쓴 다음에 우표를 붙이고, 가까운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겠어요?”
  콘웨이는 그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따위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라니! 이건 함정이라고요!”
  콘웨이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해보겠어.”
  “꼭 가셔야만 해요?”
  “가야지.” 그는 완고하게 말했다. “참, 당신은 그녀의 목소리에 뭔가가 있다고 했지?”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지?”
  “저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해 왔어요. 2년 동안 전화 교환수를 했거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가가 있어요……. 참, 회장님께서는 예전에 그 목소리를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콘웨이는 이마를 찌푸렸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나는데, 그런 것 같아. 억양은 잘 모르겠지만, 말하는 속도나 호흡은 기억이 있어.”
  에바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언젠가 이 사무실에 온 적이 있는 여자예요. 회장님은 그 여자와 대화를 하신 적이 있고요. 따라서 그 여자는 목소리를 이리저리 가장한 거죠. 억양 같은 것을요. 하지만 말하는 속도나 호흡을 바꾸지는 못했죠. 그 여자는 회장님과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 점이 한층 더 의심스러운 거죠. 왜 그 여자는 회장님께 거짓말을 한 거죠? 달리 말하면 왜 그 여자는 회장님이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거죠?”
  “어쨌거나, 나는 가 봐야 하오. 그 정보가 너무나 중요하거든. 그 정보를 결코 놓칠 수가 없어.”
  갑자기 에바 케인은 유능하고 직업적인 비서의 자세로 돌아갔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하시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콘웨이는 라디오의 시보(時報)에 시계를 맞추고, 정확한 시각에 차에 올라타고 지시한 대로 운전해 나갔다. 신호등에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급발차를 해 버리자, 뒤따라오는 것 같은 차 한 대가 신호에 걸려 버렸다. 교통순경의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콘웨이는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운전을 했다. 6시 5분쯤 되어서 지정한 약국에 도착하여, 지정한 전화박스에서 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6시 12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콘웨이는 수화기를 들었다.
  “콘웨이 씨?” 생기 있는 여자 목소리가 물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로잘린드 양이 아닌 것 같은데?”
  “묻지 말고 듣기만 하세요. 로잘린드는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을 따돌리기 위해서 극히 조심을 해야만 해요. 제가 가야 할 곳을 알려 드릴게요. 준비되셨나요?”
  “준비되었소.“
  “그럼, 전화를 끊자마자 곧 그 전화박스를 나와서 차를 타세요. 레드펀 호텔로 가서 차를 주차시킨 다음, 로비로 가세요. 프런트계에게 제럴드 보스웰이라는 이름을 대시고, 메시지 온 것이 없나 물어 보세요. 그러면 프런트계가 봉투를 하나 건네줄 거예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는 해도 좋지만, 팁은 주지 마세요. 로비의 한적한 구석으로 가셔서 봉투를 열어 보세요. 그 봉투 안에 당신이 이후에 하여야 할 일을 적어 놓은 쪽지가 있을 거예요.”
  그녀는 인사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콘웨이는 전화박스를 나오자마자 곧 자신의 차를 타고 레드펀 호텔로 갔다.
  “제럴드 보스웰에게 온 메시지가 있나요?” 콘웨이는 프런트계에게 물었다.
  잠시 동안 프런트계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콘웨이는 프런트계가 본인임을 증명할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망설임도 잠시, 프런트계는 봉투를 한 묶음 꺼내더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보스웰이라……. 보스웰, 보스웰……. 참,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프런트계는 기계적으로 이름을 반복하면서 물었다.
  “제럴드요.”
  “아, 여기 있네요. 제럴드 보스웰 씨.“ 프런트계는 콘웨이에게 긴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받아 든 순간, 그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그 봉투는 두꺼운 마닐라 지(紙)로 만들어진 것으로, 속이 두둑이 채워진 채로 잘 봉해져 있었다. 이것이 패럴에게 위임장을 보낸 소액주주들의 명단일 게 틀림없었다. 이것이 있다면야 경영권 투쟁에서 필승을 거둘 수 있으리라…….
  콘웨이는 로비 한 구석으로 걸어가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낡은 의자 중의 하나에 걸터앉았다.
  그는 앉자마자 탐색하는 듯한 눈초리로 휴게실에 있는 사람들을 쓱 훑어보았다.
  신문에 얼굴을 파묻고 푹 빠져 있는 중년 여인이 한 명 있었고, 낱말 맞추기에 열중하고 있는 추레한 사내가 한 명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젊은 여자도 한 명 있었는데, 바깥으로 나가는 로비의 문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콘웨이는 주머니에서 펜나이프를 꺼내서 봉투를 찢은 다음, 내용물을 꺼냈다.
  봉투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실망스럽게도, 봉투의 규격에 맞도록 절단이 된 낡은 신문지 뭉치였다. 이 신문 쪼가리들은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고, 또한 논리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단지 봉투 안을 채우기 위해서 제멋대로 절단되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신문 쪼가리 사이에서 레드펀 호텔이라는 이름과 729라는 호실이 적혀 있는 열쇠 하나가 툭 떨어졌다.
  평소에는 매우 신중했던 콘웨이로서는 이쯤 해서 이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이 모든 계획을 세운 사람은 심리학의 대가인 것 같았다. 애초에 시작부터 이런 상태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절대 행하지도 않을 엉뚱한 일들을, 콘웨이로 하여금 스스럼없이 행하도록 만드는 것을 보니 말이다.
  콘웨이는 신문 뭉치를 다시 봉투 안에 넣고, 그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어쨌든 올라가서 알아보기라도 해야지…….
  엘리베이터 걸은 싸구려 소설책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콘웨이를 힐끗 쳐다 본 다음, 눈길을 아래로 돌렸다.
  “7층으로…….” 콘웨이는 간단하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7층에 세우고, 콘웨이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더니 콘웨이가 객실 번호를 확인하고 방향을 정하기도 전에 휭하니 내려가 버렸다.
  이 호텔은 싸구려라는 것이 곳곳에서 보였다. 비록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기는 했지만,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카펫은 얇았고, 조명도 침침해서 복도가 아주 어두웠다.
  콘웨이는 729호실을 발견하고서는 노크를 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는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노크를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열쇠를 보자 갑자기 객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주명부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털레털레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콘웨이는 열쇠를 꽂아 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곳은 거실인 것 같았고, 침실로 통하는 문은 닫혀 있었다.
  “누구 계십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콘웨이는 손을 뒤로 해서 복도로 통하는 문을 닫고, 객실 안을 쓱 둘러보았다. 혹시 자기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주주명부를 전해 주기 위해서 이렇게 꾸며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콘웨이는 거실에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자, 생각에 잠겨 침실 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침실 문의 손잡이가 돌아가고, 브래지어를 하고 팬티와 스타킹만을 신은 젊은 여자 하나가 거실로 나왔다. 침실 문을 닫더니 작은 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콘웨이가 거기에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있었고, 얼굴은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진흙 팩이라도 한 것인지 번들거렸다. 심지어는 목덜미까지도 칠해져 있었다. 까만 레이스로 된 속옷은 너무나 얇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오히려 부드러운 핑크빛 살결만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콘웨이는 너무도 당황해서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콘웨이를 발견했다. 콘웨이는 그녀가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입이 벌어졌는데, 진흙 팩 때문에 얼굴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단지 눈과 입 모양만 보였다.
  “잠깐, 내 말 좀 들으시오! 내 다 설명하리다.” 콘웨이는 말을 하면서 재빨리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당신, 로잘린드 양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진흙 팩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아주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로잘린드의 룸메이트인 밀드레드라고 해요. 당신은 누구세요? 그리고 어떻게 이 방에 들어오신 거예요?”
  그녀는 스물여섯이나 일곱쯤 되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아주 풍만해 보였고, 몸 곳곳에 도발적인 기색이 농후했다.
  이런 호텔 방에서 젊은 여자와 마주서 있자니, 콘웨이는 혹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연극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녀는 지시대로만 따르면서 어색하게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몽롱해지면서 현실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셨냐니깐요?” 그녀는 다시 탁한 목소리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로잘린드 양이 자신의 방 열쇠를 나에게 주었소. 그녀를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이것 봐요, 밀드레드 양. 겁낼 것 없소. 해를 끼치진 않을 테니까. 가서 옷을 입으시오. 나는 로잘린드 양을 기다리겠소.”
  “그런데, 로잘린드가 왜 당신에게 열쇠를 주었지요? 음……, 로잘린드는 그럴 애가 아닌데……. 거의 홀랑 벗은 채로 내 방에서 낯선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한 내 기분이 어떤 지를 당신은 상상하실 수 있어요? 로잘린드가 당신에게 열쇠를 주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어요? 그나저나, 당신의 정체가 뭐예요?”
  “로잘린드 양이 나에게 전화를 걸었었소. 그녀가 나에게 줄 서류를 가지고 있거든. 이곳에서 나에게 전해 주기로 했소.”
  “서류라고요? 잠깐만요. 서류라…….”
  그녀는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재빨리 책상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콘웨이는 또 다시 연극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책상 서랍을 연 다음,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갑자기 권총의 격침(擊針)을 뒤로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콘웨이의 눈앞에 권총의 둥글고 까만 총신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덜덜 떨면서 리볼버를 겨누었다. 손가락은 방아쇠에 위험스럽게 걸려 있었다.
  “이것 봐! 총을 나에게 겨누지 말라구! 발사될 지도 모르잖아!” 콘웨이는 소릴 질렀다.
  “손들고 꼼짝 말아요!”
  “나, 참... 바보처럼 굴지 말라구! 격침이 뒤로 젖혀있는 상태에서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준다면……. 그 총 내려놓아! 해치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녀는 콘웨이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오면서, 리볼버를 가슴에 겨누었다.
  “손들라고 해……, 했잖……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히스테리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당신은 감옥에 가야 해요!”
  리볼버를 들고 있는 손이 더 심하게 흔들거렸다.
  콘웨이는 그녀가 한 발짝 더 다가오도록 기다렸다가 거리를 잰 다음에, 왼손으로는 그녀의 팔목을 꽉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리볼버를 비틀어 빼앗았다. 그녀의 손은 힘이 없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총을 뺏을 수 있었다. 콘웨이는 엄지손가락으로 격침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런 다음, 리볼버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바보 같은 사람아! 하마터면 날 죽일 뻔했잖아!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녀는 뒷걸음치며 대형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겁먹은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콘웨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신 차리고 잘 들어봐요. 나는 아가씨를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나는 이곳에 문제를 일으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로잘린드 양이 남겨 놓은 서류를 가지러 왔을 뿐이라고…….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소?”
  “제발 절 해치지 마세요! 절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게요……. 지갑은 책상에 있어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지갑에 들어 있어요. 다 가지세요. 단지 살려만…….!”
  “닥쳐!” 콘웨이는 소릴 질렀다. “내가 그렇게 설명해주어도 모르겠어? 도대체 내 말을 어디로 듣는 거야?”
  “제발, 살려만 주세요!” 그녀는 계속 애원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다 할게요…….”
  콘웨이는 갑자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갈 거야. 내가 떠나고 나도 5분 이내에는 전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도록. 로잘린드 양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내가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발설해서는 안 돼. 알아듣겠어?”
  그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콘웨이는 복도로 통하는 문 쪽으로 급하게 걸어가서 문을 열어젖힌 다음에,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계단’이라고 적혀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5층까지 급하게 뛰어 내려간 다음,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도록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무척 느리게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콘웨이는 잽싸게 안을 들어섰다. 진땀이 솟고, 가슴이 무척 두근거렸다.
  엘리베이터 걸은 껌을 딱딱 씹고 있었다. 오른 손에는 아까부터 읽고 있던 소설책을 들고 있었고, 왼손으로는 버튼을 조작해서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콘웨이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아저씨는 두 층이나 아래로 걸어오셨나 봐요.”
  콘웨이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걸은 눈길을 계속 아래로 내리깔고 있다가, 단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콘웨이는 도저히 방 열쇠를 프런트에 가져다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호텔에서 달려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남의 주목을 끌까 봐 그렇지도 못하고, 리볼버를 엉덩이 주머니에 넣은 채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로비를 가로질러 호텔 문을 나선 다음, 차를 주차시켜 놓았던 장소로 급하게 갔다.
  그는 자동차 안으로 뛰어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갑자기 엉덩이 주머니에 들어 있던 무엇인가가 거치적거렸다.  
  그는 38구경 리볼버를 꺼내서 자동차 보관함에 넣으려다가, 갑자기 경계심이 발동하여 탄창을 열어보았다. 탄창에는 다섯 발의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고, 한 발의 빈 탄피(彈皮)에는 격침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콘웨이는 탄창을 제자리로 돌리고, 총구(銃口)에 코를 갖다 대었다. 총구에서는 최근에 발사된 화약 냄새가 모락모락 났다.
  콘웨이는 갑자기 겁이 났다. 권총을 보관함에 던져 놓고, 자동차를 발차시켰다.
  그는 전화박스가 있는 주유소에 도달하자 자동차를 주차시킨 다음, 전화번호부에서 형사변호사인 페리 메이슨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번호를 찾자 메이슨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었다. 전화번호부를 다시 찾아보자 메이슨의 집 전화번호는 없었고, 야간용 전화번호가 실려 있었다. 콘웨이는 야간용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선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것은 녹음된 메시지입니다. 만약 고객께서 아주 급한 용건으로 페리 메이슨 씨의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다면, 드레이크 탐정 사무소로 다시 전화를 해 주십시오. 성함을 말씀하시고 주소와 용건을 남겨 주신다면, 메이슨 씨가 최대한 빨리 연락을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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