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4년 영화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영화 특별전을 하는데 3D로 상영을 한다길래(!) 그리고 그게 2D를 3D로 변환한 게 아니라 애초에 3D로 촬영된 거라길래(!) 보러 다녀왔어요. 독일 뮌헨의 영화박물관장(?)님이 오셔서 당시 제작된 3D 영화 이야기도 해 주셨네요. 서울랜드나 자연농원에서 과일 던지고 롤러코스터 타는 종류의 3D 영화 말고 그 옛날에도 3D 영화를 찍었다니 많이 놀랐네요. 효과가 생각보다 후진 데다 안경도 무겁고 해서 1년만에 붐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이 영화만 해도 3D로 개봉했지만 관객들이 하도 싫어해서 2D로 재개봉하면서 오히려 홍보를 다시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근데 보니까 나쁘지 않았어요. 근작 아바타나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놀라운 입체감을 주지는 않지만, 실내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 깊이감을 주는데 신경이 쓰이는 지점들을 은근히 짚어 주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고전 추리물에서 또 이런 요소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어라 저 뒤의 사람 뭘 하는 거지? 핸드백이 왜 자꾸 보이지? 등등...
카메라가 크고 무거운 탓이었을지 몰라도 영화는 거의 연극처럼 제한된 장소에서 진행됩니다. 주인공이 옛 동창을 불러 음모를 꾸미는 초반은 좀 지루하기도 했어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대사로만 풉니다. ㅠㅠ 범죄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순간, 의도와 다르게 벌어지는 일들 묘사는 훌륭했습니다. 고전적인 미스터리의 조건도 잘 갖춘 듯해요. 트릭은 오히려 조금 쉬운 감도 있지만 공정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내가 보고 알고 있는 게 진실일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갖게 해 줍니다. 마냥 음모와 거짓말만 있는 건 아니고 군데군데 유머가 있어서 좋았어요. 사건의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 설명이 길어지는 느낌도 들고 주인공의 행동을 설명하는 형사 장면은 귀엽기까지 합니다만 세월을 감안하고 그 친절함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5/17에 한 번 더 상영을 한다 하니 궁금하시면 보러 가 보세요. 꼭 3D로 볼 필요는 없지만 많이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