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니 코키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풀어놓고 거기서 독특한 상황을 추출해내는 데 천재적인 감독이다. 당연히 원작 소설은 그에게 꽤 매력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작품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해당하는 1부와 범행을 저지른 이의 시선으로 보는 2부로 구성돼 있는데, 4시간 30분에 가까운 긴 분량이다. 이 드라마를 영상화하는데 당연히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의 허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덕분에 1부는 원작 소설을 그대로 따라간다.
미타니 코키의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는 2부는 그의 장점의 드러나려고 하다가 사그라진다. 살인이라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용의자 모두에게 적당한 무게감을 주려고 노력했는데, 그 부분이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튼튼한 원작의 틀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미스터리는 결말에 숨겨진 진상이 드러나면서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인데, 너무나도 잘 알려진 작품이라 사건의 이면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1부는 노무라 만사이의 원맨쇼로 드라마를 지탱하고, 2부는 구구절절 사연으로 드라마를 지탱한다.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와 미야베 미유키가 결합된 형상이다.
미타니 코키의 팬으로서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원작의 팬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이 스페셜 드라마는 보는 재미가 있다. 노무라 만사이를 비롯해 연기자 모두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디테일한 시대 상황의 재현은 물론 당대 복식(특히 모자) 등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참 편안하다. 이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원작에 너무 익숙해서인가..).
쓸데없는 말을 해보자면, 용의자 중에 왼손잡이는 한 명밖에 없고 그것도 오류가 좀 있는 것 같다. 왼손잡이의 칼질(;)과 오른손잡이의 칼질이 구분되는 형태는 아니던데.. 그리고 그 시대에 CCTV가 있었다면 정말 가관이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글에서 스포일러를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