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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비밀은 없다]를 보고 왔습니다.

정치 스릴러인 것처럼 홍보되다가 이 주를 채 못 채우고 (서울의 경우) 상영관이 전멸했는데요,

이렇게 잘 만든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영화일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저 즐길 영화는 아니겠지만, 이 정도 푸대접은 너무 부당하게 여겨져요.

얼마 전 많은 호평을 받은 [곡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당 텃밭 지역, 남편의 국회의원 선거운동 시작일에 중학생 딸이 사라지고,

소위 문제아였던 전력 때문인지 아무도 딸의 실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가운데

공부 머리 없고 가수가 되고자 했던 멍청한 전라도 출신 연홍이 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비장하고 심각한 분위기, 문득 사건 하나가 던져지고,

외면받고 조롱받으며 사건의 줄기를 추적하는 주인공 앞에

그간 스쳐간 다른 사건이 엮이고 거대한 음모의 안개가 걷히며 충격적인 진상이 드러납니다.

너무나 전형적으로 잘 짜인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죠...


다만 필립 말로가 수임료와 기사도로 움직이는 탐정이라면,

연홍은 그저 딸을 찾고, (찾은 후에는) 이해하려 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감동이 컸는데 결국 탐정이 하는 것은 남의 일인 반면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만나는 엄마와 딸을 보게 되어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대체 아빠는 뭘 하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개인적으로 하드보일드의 중요 요소로 생각하는 '겉멋'은 '이상해지기'로 나타납니다.

캠프에 합류한 사람들에게 김밥을 차려 내고, 예쁘게 화장하고 선거송에 맞춰 율동하던 연홍은

헝클어진 머리로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며 경찰서에서 행패를 부리고 선거운동원 앞에서 자해와 협박을 합니다.


하드보일드 세계에 만연한 악도 슬며시 드러나는데, (역시 잘 만든 하드보일드 영화들이라고 생각하는) 

[키스키스뱅뱅]이 가정 성폭력, [브릭]이 고등학교의 마약과 성 문제를 다뤘다면

이 영화에 내재된 악은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입니다.

그저 누구를 따돌리고 친구가 줄어 삐치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물리적인 상해, 또래 다수의 외면, 삽시간에 죽음까지 생각하는 왕따 문제를 짧고 굵게 보여 줍니다.

피해자가 순진한 아이로만 남지 않고 또다른 범죄 가해자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고요.

연홍을 제외한 모든 인물, 어쩌면 연홍까지도 모두 끔찍한 면을 보이기에 호감을 갖긴 어려울 수 있지만

다들 자기의 틀 안에서 최선의 선택/행동을 하기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인물들의 심리를 잘 보여 준 대사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요.

꼼꼼한 복선 활용도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제프리 디버가 말했다는 내용에 바탕하면 이 영화는 앞으로 뭔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스릴러가 아닌,

일어난 일의 진상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그것도 딸 찾는 엄마의 하드보일드입니다.

정치 스릴러인 것처럼 홍보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오래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을까 아쉬움이 남아요.

(하지만 하드보일드 팬보다야 스릴러 팬이 훨씬 많겠죠...)

미스터리, 특히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꼭 한 번씩 보시면 좋을 영화라고 생각해서 두서없이 소개하고 갑니다.

[차이나타운]까지는 몰라도 [키스키스뱅뱅], [브릭] 못잖게 매력적인 한국 하드보일드 영화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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