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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발간
2017.08.17 07:28

환상의 여인 - 윌리엄 아이리시

조회 수 22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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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가 끝내준다고 하기에 반신반의하며 첫 장을 펼쳤다. 근데 진짜 끝내주었다. 그리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읽고 난 지금, 세계 3대 추리소설과 관련하여 작품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심스럽지만 나머지 두 작품보다는 흥미가 덜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끝내주는 도입부가 거의 다했다 싶을 만큼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흥미는 떨어졌다. 그래도 항상 그렇듯이 '이런 이야기도 있을 수 있구나'하는 측면에서는 반가웠다. 다음은 작품의 도입 부분이다.


어느 날 밤, 주인공 스콧 헨더슨은 아내 마르셀라 헨더슨과 큰 싸움 후 밖으로 나가 충동적으로 한 술집에 들어가게 된다. 술집의 새빨간 네온사인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그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뚱한 표정으로 바에 앉아 시종일관 불쾌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여자를 보았다. 이번에는 선명한 오렌지빛의 모자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그녀를 보았다. 대범하지 않고서야 보통 사람들은 감히 쓸 엄두도 내지 못할 봉화 같은 모자는 그녀에게 곧잘 어울렸다.


헨더슨은 처음 만난 그녀와 인사를 나눈 후 하룻밤만 친구로 지내자는 제안을 한다. 친구처럼 밥을 먹고, 친구처럼 공연을 보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자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처럼. 이미 부인이 있는 그에겐 아슬아슬했지만 '친구처럼'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후에 귀찮아질 문제는 없을 듯했다. 과연 그럴까? 헨더슨은 자정이 되어서야 그녀와의 즉석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 마르셀라는 죽어 있었고, 그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는 조금 전 술집에서 만난 그녀를 찾아야 했다. 경찰이 추정하는 아내의 사망 시각에 바에서 그와 같이 있었던 그녀만이 헨더슨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놈의 '친구처럼' 때문에 그는 아까 만났던 그녀의 이름도, 주소도, 그 무엇도 아는 것이 없었다. 오직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눈부신 오렌지색 모자뿐이었다. 그 외의 그녀에 대한 모습은 강렬했던 오렌지색에 섞여 흐릿하기만 했다.


그가 아무리 우겨도 경찰의 눈에는 모든 정황이 헨더슨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용의자에서 살인자가 되고 곧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헨더슨의 연인 캐럴 리치먼과 그의 친구 존 롬바드는 감옥에 갇힌 그를 대신해 연기처럼 사라진 그녀, 하룻밤의 환상 같았던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날 밤 헨더슨이 환상의 여인과 방문했던 레스토랑과 극장의 관계자들, 이동할 때 탑승했던 택시 운전사 모두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일행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은 사형 집행일을 향해 속절없이 흘러가고,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오렌지색 모자뿐인 그의 친구들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헨더슨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게다가 이 와중에 헨더슨의 혐의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한 명씩 죽어 나가기까지 한다. 환상의 여인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열 발짝은 더 멀어져갔다. 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가.


읽는 책마다 교훈을 찾지는 않지만, 작품 마지막에 대놓고 등장하는 친절한 교훈이 인상적이었다. "모르는 사람과 절대 극장에 같이 가지 말 것. 가게 되더라도 얼굴은 똑똑히 기억할 것." 그만큼 주인공이 한 여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일어난 사달이었다. 아무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나에게 설득하려 든다니, 주인공이 미치지 않았던 건 다행히 그를 믿어주고 그를 대신해 기꺼이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태어난 뉴욕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긴 했지만 읽으면서 딱히 뉴욕이 떠오르진 않았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현대식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면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코넬 울리치(혹은 필명인 윌리엄 아이리시)는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 "누구든 결국에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만의 필터로 걸러서 보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작가의 삶을 살짝 들춰보니 그만의 필터를 거쳐 나온 뉴욕의 모습이 십분 이해가 갔다. 작품 속 뉴욕은 참으로 어둡고 우수가 어린 도시였다.

  • decca 2017.08.17 09:17
    밤은 젊었고, 그도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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