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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발간
2017.12.22 01:32

활자 잔혹극 - 루스 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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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작품은 첫 문장만으로도 그 작품 전체를 떠올리게 한다.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은 단연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살인범이 초반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음에도 첫 문장부터 주어진 충격과 팽팽한 긴장감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사라질 줄 모른다. 그 이유는 아마 유니스가 필사적으로 숨기고자 했던 한 가지 비밀 때문일 텐데, 이곳에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어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유니스는 '문맹'이다. 그녀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평생을 거짓말해 왔고 결국 커버데일 가에 이르러서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유니스는 자신이 글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 예를 들어 세금 납부 시 필요한 서류 작성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피하기 위해 커버데일 가의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 그녀에게 가정부로서의 자격은 별로 없었지만 때마침 여러 우연이 기적처럼 따라준다. 글로부터 멀어져 조금이나마 편하게 살고자 했건만 애석하게도 그녀가 마주한 집안은 그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수치스러워하는 유니스에게 글이란 곧 위협이자 적이었다. 때문에 그런 그녀에게 책으로 가득한 커버데일 가의 집 내부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니스가 자라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한 각종 속임수였다. 글을 읽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는 시력이 안 좋다는 거짓말로, 너그러운 집주인 조지 커버데일 덕분(?)에 필요 없는 안경이 생긴 후로는 안경을 위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한다. 이처럼 계속되는 유니스의 이상한 행동을 본 조지는 맨 처음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그녀의 수줍음 탓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 눈에 띄기 시작한 여러 기이한 행동들은 집안사람들 모두 그녀를 섬뜩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시작한다. 이는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유니스에게는 이미 한 번 살인을 저지른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유니스의 병적인 집착은 그녀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따뜻한 커버데일 가의 손길을 거부하고 밤마다 컬러텔레비전에 빠져든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초콜릿을 먹으며 경찰 수사 드라마를 보는 것이었다. 그녀가 어째서 커버데일 가를 몰살했는지를 단순히 문맹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항상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커버데일 가에는 잘못이 없는지, 컬러텔레비전에서 밤마다 방영되는 폭력적인 영상에는 잘못이 없는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살이 찌든 말든 상관없이 초콜릿을 먹어대는 것처럼 각종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유니스 개인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결론적으로 무엇이 유니스의 살인 충동을 야기했다 하더라도 "커버데일 사람들이 유별나게 많이 배운 축에 속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나 그들에게나 불운이었다."라는 작품 속 말에 공감한다. 다른 평범한 집안의 가정부로 고용되었다면 이러한 파국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문장만큼이나 그 파국에 이른 결말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문맹 유니스 파치먼'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벌이라 생각한다. 아등바등 자신의 비밀을 감추고자 했던 그녀가 조금은 안쓰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감추고 싶은 비밀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긴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유니스를 중심으로 감상을 쓰기는 했지만, 그 외 다양한 인물들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과하지 않게 잘 섞인 덕분에 더욱 흥미로웠다는 말을 꼭 남겨야겠다.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평생 느끼지 못할 문맹의 아픔을 가진 유니스를 다른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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