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창작
2013.07.25 12:57

아리아드네의 실 14

조회 수 156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디야, 도대체!”

요 근래, 6개월 동안의 외출을 한 번에 몰아서 하고 있었다. 나는 이십 분째 헤매고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동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냥 정문 앞에서 내리면 바로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끝 쪽인 것 같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는 눈앞의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봤다. 903동. 

“뭐냐고, 이게!”

오늘 새벽, 여고형의 다정하고도 신랄한 마음씀씀이에 감동하며 잠을 청했다. 물론, 잠이 올 턱이 없었다.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로매에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충혈된 눈 안으로 땀이 스며들었다. 뒷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안 되겠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형, 저예요.”

“어 그래, 왜 안와?”

“아 도착은 했는데, 여기 903동이에요.”

“내 충고를 안 따랐군. 잠을 푹 자라니까. 거기서 큰 길 보여?”

“네……,”

“택시 타라.”

“아, 네.”

드디어, 2400원을 투자해서 2분 만에 103동에 도착했다. 4층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불안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괜히 이쪽저쪽을 살피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아파트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407호로 향했다. 그리고 벨을 눌렀다. 

[띠리리 리리, 띠리리 리리]

여기도 ‘It’s a small world’ 세상은 작아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일까. 이번 일이 무사히 마무리 지어지면 집 벨소리를 바꿔야겠다. ‘don’t worry be happy’로.

“어, 들어와. 열려 있어.”

문 너머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헉!”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긴 머리의 흐릿한 형체가 눈앞에서 낑낑대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형체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손을 들어 눈을 문질렀다. 

“잠깐, 잠깐. 방충창 좀 걷고.”

방충창이 도르르 올라가 위에 탁하고 걸리더니 남중이형, 아니 여고형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뒷목 부근에서 널부러진 긴 머리, 빨간 줄무늬 민소매 속옷에 줄무늬 반바지. 몇 달 전 집에서 뒹굴던 내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여고형은 손목에서 노란색 고무줄을 빼내서 뒷머리를 질끈 묶더니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다. 들어와.”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듬직한 그 감각에 나는 잠시 위안을 느꼈다. 그런데 여고형은 내 손 주변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나를 밀치고 문 밖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실망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뭐, 주스나 뭐 그런 거 안 사왔어? 남의 집에 처음 오는 건데.”

나는 놀랍지도 않았다. 원래 이런 사람이다. 

“아, 죄송해요. 형. 이따가 점심 살게요.”

“그래, 그래야지.”

형은 내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였지만, 굉장히 넓어 보였다. 그만큼 살림살이가 거의 없었다. 거실에는 작은 앉은뱅이 책상과 TV, 에어컨이 있었고 그 주위에 종이 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전화기 한 대와 빨간색, 파란색 펜들이 가득했고, 구식 노트북 하나가 전원에 연결돼 있었다. 혼자 사는 모양이었다. 

“와, 형. 서울 시내에 아파트라니. 성공하셨네요.”

“음? 내 거 아냐. 은행 거지. 대출 갚느라 허리가 휘어. 몇 년인 줄 알아? 20년이야. 20년.”

역시 나는 대화를 먼저 시작하면 안 된다.

“아, 네.”

여고 형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살은 좀 쪘는데 얼굴이 많이 상했네. 일단 앉아라. 얘기를 들어보자. 몇 년이지? 이런 일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8년이요. 휴…….”

여고형은 부스럭대더니 종이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 무슨 일 하세요?”

“어 나? 교정교열.”

“음, 일종의 전문직이군요?”

“아니? 알바야.”

“아, 네.”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스무고개’ 창립 멤버들은 모두 알바를 하는 듯했다. 여고형은 쿨피스 한 잔을 시원하게 따르더니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우유까지 섞어 정성껏 아이스커피를 만들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손님용 음료수가 따로 있나보군.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야?”

“음, 얘기하자면 길어요.”

“해봐. 길게. 단 상세하게 말해. 네 해석은 넣지 말고 음, 어조도 살리고, 그렇지, 연극을 한다는 생각으로 아주 생생하게. 그래야 정확하게 알 수 있어.”

난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 이렇게 돼서 그날 밤 형에게 전화를 걸게 된 거예요. 로매가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요. 일단 그 동네에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면 형도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

손짓발짓에다가 목소리 연기까지 곁들여 약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니 나는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 여고형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조는 건가?

“형? 형?”

여고형은 손을 저어서 나를 물리쳤다. 그러고는 갑자기 눈을 뜨더니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역시 이 습관 안 없어졌군!

“흠, 그래서 로매는 지금까지 연락이 안 된단 말이지?”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시간이 없어요. 정말 큰일 난 것 같은데. 전화기가 완전히 꺼진 것 같아요.”

“음 어제 신고를 해야 했나…….”

“뭐라고요? 형이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니, 난 자세한 상황은 몰랐으니까.”

이 망할 인간이. 머리에서 김이 솟는 것 같았다. 그리고 뜨거운 불안감 역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형,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그나저나 너 구연동화 같은 거 해도 되겠다. 얘기 참 맛깔나게 잘하네.”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이 형은  사건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가? 

“알았어. 알았어. 일단 정리해보자. 너랑 로매가 오랜만에 만났어. 그리고 로매는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수상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너에게 얘기했지. 그 문자 메시지에서 범죄의 가능성이 엿보였고, 로매는 너에게 도움을 청했지. 여기까지 맞지?”

“네.”

“그래서 너희 둘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피해자의 집일지도 모르는 집을 알아냈고, 이야 그건 정말 대단해. 상큼한 아이디어야. 그리고 거기 가서 시체일지도 모르는 뭔가를 발견했어. 맞지?”

“네.”

“그리고 너나 로매나 멍청한 짓을 했고 로매와 시체는 행방불명. 이게 사건의 골자. 맞지?”

“네 정확해요.”

여고형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숙였다.

“기이한 일이군. 확실히 로매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죠?”

“그런데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일단.”

로매 형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딱 질문 세 개만 할게. 궁금하더라도 되묻지 말고 그냥 정확히 답만 해.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나, 둘이 처음 만날 때 비가 왔다고 했지. 로매가 우산을 가지고 있었어?”

“아뇨. 편의점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같이 썼어요.”

“음 그럼 둘, 이틀 동안 로매 옷차림을 설명해봐. 장신구까지 세세하게.”

“음, 그러니까 첫날은 옷깃이 있는 회색 반팔 셔츠랑 청바지였고요. 신발은 단화 같았는데. 둘째 날은 음, 남색 반팔 티에 그 뭐죠? 아 카고 바지. 갈색 카고 바지. 그리고 까만색 운동화를 신었었어요. 그리고 검은색 백팩. 귀걸이나 반지 같은 건 없었어요.”

“마지막, 가령 네가 이런 일 즉, 우연한 범죄의 흔적과 맞닥뜨렸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너는 로매에게 연락할래?”

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로매에게 연락할까? 아니? 내가 왜? 나는 아마 로매라는 존재를 떠올리지도 못했을 거다. 삼촌하고 상의하지 않았을까?

“아니요……. 안 할 것 같은데요.”

“그래. 알겠다. 나가야 할 것 같군. 잠깐만 이것 좀 확인하고.”

여고형은 갑자기 옆에 있는 노트북을 열더니 뭔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노트북 덮개를 탁 하고 닫더니 일어나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어디 가게요?”

“일단 네 집. 어차피 그 방향이니. 거기서 의정부에 가야할지를 판단해야겠다. 밥은 거기서 사줘.”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사항 이곳은 '연재 및 번역'입니다. decca 2014.11.21 1786
공지 공지사항 이곳은 '연재 및 번역'입니다. decca 2003.03.16 8233
173 창작 [11월 넷째 주] 1 여우비 2015.11.26 592
172 창작 [11월 둘째 주] 1 여우비 2015.11.13 492
171 창작 방구석의 노처녀 2 endecorb 2015.08.26 1361
170 창작 바닥_07 adiosmylovely 2014.05.30 1662
169 창작 바닥_06 adiosmylovely 2014.05.26 1425
168 창작 바닥_05 adiosmylovely 2014.05.22 1403
167 창작 바닥_04 adiosmylovely 2014.05.19 1385
166 창작 바닥_03 adiosmylovely 2014.05.14 1231
165 창작 바닥_02 adiosmylovely 2014.05.14 716
164 창작 바닥_01 adiosmylovely 2014.05.14 1120
163 창작 퇴고본인데 어떠신가요 1 브벨 2014.05.01 1443
162 창작 습작 평가 부탁드립니다. 5 브벨 2014.04.27 1379
161 창작 살인의 수학 (3) : 무죄 확률 7300만분의 1 2 file 하이아 2013.09.05 7202
160 창작 살인의 수학 (2) : 대리 뮌히하우젠 증후군 2 file 하이아 2013.07.31 7897
159 창작 [창작] 달걀귀가 무서워 못 간다 예고 4 이용원 2013.07.31 5284
158 창작 아리아드네의 실 16 (완결) 12 decca 2013.07.28 5627
157 창작 살인의 수학 (1) : 1999 영국 유아 연쇄 돌연사 사건 3 file 하이아 2013.07.27 8249
156 창작 아리아드네의 실 15 3 decca 2013.07.26 2375
» 창작 아리아드네의 실 14 decca 2013.07.25 156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copyright 1999 - now howmystery.com all right reseved. deccaa@gmail.com / haanakiri@gmail.com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