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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4 03:06

바닥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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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여름

 

, 아까 오후쯤에 어떤 여자 애가 너 찾아왔어.”

 

아래로 길게 뻗은 짙은 마스카라에 파우더가 두툼하게 입혀진 그녀의 얼굴은 그 틀마저 각이 져 볼 때마다 경극 배우 생각이 났다. 그녀 앞엔 칠이 다 벗겨진 좌식 밥상이 펼쳐져 있었고, 멀찌감치 떨어져 거의 눕듯이 벽에 기댄 그녀의 손에선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가 반짝거렸다.

 

여자?”

 

나는 방문 옆에 가방을 털썩 내려놓고는 방 한가운데에 들어선 밥상 쪽으로 가며 물었다. 방이라고는 했지만 실은 허름한 2층 나이트클럽 건물 옥상에 휑하니 들어선 옥탑방이다.

 

. 그냥 가게이름만 대충 알고 온 것 같던데, 좇나 겁먹고 갔어.”

 

실실 웃는 마스카라의 코에서 뿌연 연기가 한 움큼 쏟아져 내렸다. 흘러나온 연기가 밥상 위에 올려진 양은 냄비까지 퍼져나가더니 불어터져 곤죽이 된 라면 면발위에서 사라졌다.

 

근데 걔, 쫌 귀엽게 생겼더라.”

 

냄비 옆에 놓인 플라스틱 재떨이 위엔 이빨 자국이 선명한 꽁초들이 무덤을 이루고 있었고, 마스카라가 그 위에 자신의 담뱃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틈을 두더니 야릇한 실눈을 하고서는 툭 내뱉었다.

 

, 걔 따먹었지?”

 

한손을 살짝 말아 쥐어 타원형을 만들고 다른 손으로 그 원통 윗부분을 탁탁 내리치는 모습이 마치 오랜 경력의 마술사가 자기 손안으로 손수건을 감추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천박한 호기심을 상대하기가 귀찮아졌고 그래서 다음 질문까지 한참을 뜸을 들였다.

 

이름 물어봤어?”

 

평소엔 쳐다보는 것도 역겨워 눈인사나 억지로 하는 사이인데 오늘은 벌써 두 번째 질문이다.

 

아니. 어떻게 왔냐고 물으니까, 그냥 네 이름 대면서 여기가 네 집 맞냐고 하더라고.”

 

사실 여긴 밥만 먹고 가는 곳이다. 잠자는 곳은 따로 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 씩 들르긴 하지만 집은 따로 있고, 걔네 아빠가 아래층 나이트클럽 사장이라 학교 야자 끝나면 여기 와서 밥도 먹고 가끔 용돈도 챙겨가고 그런다 그랬지.”

 

확실하게 하기위해 이름을 알아냈느냐고 묻긴 했지만 가게 이름을 알고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떠오른 애가 있었다. 오후쯤 왔다고 했으니 아직 손님 받기 전이라 클럽 안은 들어가 보질 못했을 것이다. 그 애 주변 환경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비스듬했던 시선이 다시 정면의 마스카라에게로 옮겨졌다. 그녀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수명을 다한 담배는 재떨이에 쌓인 꽁초더미 위에서 짓이겨지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구석에 세워진 냉장고로 갔다. 먹을 거라곤 김치에 식어빠진 밥, 그리고 냉동실에 처박힌 막대 아이스크림 몇 개가 전부였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낸 뒤 들어올 때 던져놓은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데 마스카라의 탁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너도 조심해 새꺄. 네 애비나 따라하지 말고.”

 

못들은 척 그냥 가려 했지만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궁금해져 뒤를 돌아다보았다. 경멸하는 듯 한 웃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시 돌아 나오려 할 때, 그녀가 카악 하며 가래침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퉤 뱉는 소리가 뒤따랐다. 난 그 타깃이 라면 냄비가 아니라 재떨이 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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