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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04:15

바닥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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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코'가 내 방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한 건 이 집 자물쇠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였다. 다세대 주택 1층 구석에 위치한 어두컴컴한 쪽방인데다 딱히 돈 되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탈이 난 채로 두고 있었는데, 한 손에 만화책을 든 채 낄낄거리며 누워있는 녀석을 보니 수리비가 좀 들더라도 고쳐놓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는 나와 같은 나이에 다니는 학교도 같았다. '각진 코'란 별명은 그가 틈날 때마다 엄지와 검지로 코를 위로 세우듯이 문지르는 버릇 때문에 내가 붙인 별명이었는데, 그는 그런 식으로 자꾸 비비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코가 높아질 것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좀 음흉한 구석이 있는데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애들 흉내를 내느라 가끔 건들거리긴 해도 바탕 자체가 나쁜 녀석은 아니어서, 나는 그가 새엄마의 여동생 아들이란 사실만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보다는 좀 더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 왜 왔어?"

 

각진 코의 옆에 쌓아올려진 만화책들 중 한권을 집어 들며 내가 물었다. 고행석의 불청객시리즈였다.

 

"누나 만나러 갔었는데, 목욕 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잠깐 신세지러 왔지"

 

누나란 '마스카라'를 가리켰다. 그녀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녀석 혼자서 쫓아다닌 지 좀 됐다.

 

", ... 오늘은 꼭 한번 해야 되는데."

 

"아직이야?"

 

". 줄듯 하면서 자꾸 튕기네."

 

녀석이 몇 번 같이 자자고 졸랐었는데 잘 안됐나 보다.

 

"근데, 어디가 그렇게 좋아?"

 

"딱 봐도 죽이게 생겼잖아. 테크닉도 끝내줄 것 같고."

 

각진 코의 손이 느슨해진 벨트 아래로 들어가더니 불룩해진 팬티 위를 쓰윽 한번 훑었다.

 

근데...“

 

나는 잠시 사이를 두고 물었다.

 

가게 오는 아저씨들 매일 상대하다 막상 네꺼 보면 물건 같기나 하겠냐?”

 

각진 코가 발끈했다.

 

"미친 새끼. 너 내꺼 봤어?"

 

나는 울그락불그락하는 그를 앞에 두고 '안 봐도 뻔하지 뭐'라는 말을 더하려다 그만 두었다. 그러면 진짜로 꺼내 보여줄 기세다. 별로 유쾌한 그림은 아니다. 남자 둘만 있는 좁은 방에서.

 

"근데, 좀 전에 들어와서 나 있는 거 슬쩍 보고는 다시 나갔다 왔잖아."

 

흥분을 가라앉힌 각진 코가 보고 있는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누구야?"

 

모자라 보이긴 해도 눈치하난 귀신같다.

 

"교회 친구. 같이 왔는데 그냥 돌려보냈어."

 

"여자?"

 

"."

 

녀석이 손에 든 만화책을 접더니 '호오' 소리를 내며 내 쪽을 쳐다봤다.

"괜히 미안하네. 나 때문에."

 

맘에도 없는 얘기였다. 그는 곧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가 먼저 오자고 한 것도 아니니까."

 

이번에는 그가 벌떡 일어섰다.

 

"이 새끼. 진짜 미친 놈 맞네."

 

그가 쥐고 있던 만화책이 바닥에 팽개쳐지듯 엎어졌다.

 

", 여자가 제발 좀 따먹어 달라고 남자 혼자 있는 집엘 찾아오는데, 그런 기횔 걷어 차냐. 븅신 새끼야."

 

착한 녀석이긴 한데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나는 못들은 척 그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고 잠시 씩씩거리던 녀석도 늘 그렇듯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엎어놓은 만화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만화방에서 빌려 온 스무 권 남짓 한 만화책들을 모두 끝내고서야 각진 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안은 그가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책들로 인해, 마치 관객들이 먹다버린 음료수 캔이며 과자봉지들로 뒤 덥혀진 영화관 객석만큼이나 어지럽혀져 있었다.

 

'가려고?"

 

". , 설마 여태껏 때 밀고 있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번졌다. 아마 제멋대로 상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구제불능인 놈이다.

 

"만화책 좀 이따 갖다 줘."

 

그가 나에게 명령하듯 말하고는 방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뭔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돌아서서는 다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참, 엄마가 아침에 해물파전 만들어 놨다고 이따 와서 가져가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이 더운 여름에 다른 음식도 아니고 웬 파전이람.' 하고 생각하고는 보고 있던 고행석의 '노래하는 불청객' 열두 번째 권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 샌가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방안의 뜨겁던 공기가 한 풀 꺾여있었고 창밖으로는 어스름이 져 있었다. 옆에서는 잠들기 전에 틀어놓은 선풍기가 이 일이 마치 자신의 숙명이라는 듯 묵묵히 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다시 이대로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해야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어지럽던 방안을 대강 정리한 뒤 각진 코가 빌려온 만화책을 챙겨서는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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