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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00:55

[11월 둘째 주]

조회 수 47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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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친고죄의 경우 신분관계가 있는 자에 대한 고소취소는 비신분자에게도 효력이 있다.(      )

무려 3분이나 문제를 노려보았지만,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런 류의 문제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O가 들어가든 X가 들어가든 어느쪽도 그럴듯해보인다.


어제 밤에 야동만 안봤어도 머리가 팽팽 돌아갈텐데...그건 아닌가.

더이상 고민해봐도 의미가 없기에 괄호안에 대충 동그라미를 그렸다.


내가 책상에 반 쯤 엎드린 자세로 <형사소송법>의 문제를 풀고있을때, 옆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음료수 마시러 가자"


아까 마시고 온 지 5분됬다만.



나를 불러낸 녀석은 김태건이라는 녀석으로,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 녀석이다.

눈은 쌍꺼풀이아니라 삼(3)꺼풀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쌍꺼풀이 진한데, 눈꼬리는 쳐졌고 눈동자는 묘하게 초롱초롱해서 덩치와 얼굴이 안맞는 녀석이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고등학교를 다닐때엔 별로 안 친했고, 졸업 후 어느샌가 친해졌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5분에 한번 꼴로 음료수를 마시자며 날 불러내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은 오늘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립도서관이라도 이렇게 자주 왔다갔다하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하는건 민폐리라.


자판기에 천 원짜리 지폐를 넣고, 코코팜을 골랐다.

군대에 있을때는 코코팜이 800원이었는데 사회에선 천 원이다. 이게 바로 날강도 아닐까?

개인적으로 느끼는거지만 코코팜 캔 안의 포도 알맹이들도 별로 안들어있는것 같다.


내가 코코팜 캔을 딸 때, 태건이가 말을 꺼냈다.


"야 동생이 좀 이상한거 같다"


입안 가득히 음료를 물고서, 눈을 마주친 채 턱짓을 했다. 우리들만의 신호다. <더 자세히 말해봐>라는 신호.

비록 공부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친구의 고민을 들어줄 정도의 여유는 있다. 


친구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건 그만큼 나를 믿고, 내가 고민을 해결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아 너한테 말하는건 좀 아닌가.."


나를 믿기는 개뿔.


나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호기심은 남들의 갑절은 된다.

5분에 한번씩 자판기를 찾는데다가 동생이 이상하다며 운을 땠다.


내 호기심을 기상시키기엔 충분한 짓이다.

동생이 이상하다면 우선 동생 본인과 이야기해보거나, 가족끼리 대화를 해보는게 일반인이다.


하지만 태건이는 나에게 말을 꺼냈다.

그건 가족들과의 대화나 동생과의 대화에서도 별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태건이의 여동생은 중학교 3학년생으로, 태건이와 다르게 몸은 아담하고 구리색 피부빛을 가진 아이다.

태건이가 눈이 쳐져서 슬픈 눈빛이라면, 이 아이의 눈빛은 시종일관 싱글벙글한 느낌이다.


실제로 대화해본적은 없지만, 태건이네 어머님께서 집안일을 잘 돕는 딸이라고 자랑하시는건 들었다.

식당을 운영하시느라 바쁜 부모님을 위해서 최소한 빨래는 도맡아 한다고 했던가.


태건이가 옷을 더럽혔을때, 세탁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해맑게

'동생이 빨아줄거야'라고 말해서 진심으로 바보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생답지 않게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몸매관리를 하고있다는것을 안다.

예전에 태건이네 집에 놀러갔을때, 집안에서 온갖 스트레칭, 요가 도구들을 본 적이 있다.


"동생이 남자친구라도 사귀냐? 그러면 신경꺼라. 그 나이때 연애 할 수도있지 뭐"


"그런거면 내가 고민하겠냐 바보야... 아 말할까 말까"


대화하자는 암시를 잔뜩주며 불러내놓고, 이제와서 고민하는건 뭐하는 짓거리냐.

내 시간에게 사과해라! 내 인생의 몇 분에게 사과해라!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때, 태건이가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 넌 머리가 썩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범한 일상을 색다르게 해석해내는 재주가 있으니까..어쩌면 그 색다른 해석으로 날 좀 도울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돕지 못할것 같긴 하지만..."


칭찬인가 욕인가.

내가 몇 몇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 속에 숨겨진 힌트로 의외의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는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인지 모른다는것도 사실이다.


정답이면 어떠하고 오답이면 어떠하리.

나는 그저 고민을 상담해줬을 뿐이다...정확히는 고민속에 숨겨진 퍼즐을 풀어낸거지만.


내가 풀어낸 퍼즐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이 퍼즐은 공정한 퍼즐이 아니니까. 공평하게 조각을 쥐어주는게 아니다.


그냥 내 손에 들어온 조각들을, 가장 그럴듯하게 끼워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즐길 뿐이다.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내 관심 밖이다.


"내가 도울수 있는거라면 도울게. 일단 말해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생이 외모관리를 너무 심하게 해"

태건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난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했다. 이 녀석은 예전부터 앞 뒤를 잘라먹고 하이라이트 부분을 내뱉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그게 뭐가 나빠? 천천히 전후과정을 전부 다 말해봐"


그제서야 태건이는 차분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매일 저녁마다 운동장에 뛰쳐나가서 운동장을 뛰고 들어와. 평소엔 안그랬는데, 지난주부터 갑자기 매일 뛰어!"


외모관리-특히 몸매를 위해서 운동을 하는게 도대체 왜 이상한거지?

여자라면 다 관리하는거 아니었나.


태건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운동장에서 뛰고 온 다음에는 거실 쪽 화장실에서 바로 샤워를 한다니까? 걔는 원래 거실 쪽 화장실 안쓰는데! 그것두 운동장에 나가기전에 미리 화장실앞에 옷가지를 차곡차곡 준비해놓고!"


하고자하는 말의 의미는 알겠다.

요컨대 태건이의 집은 화장실이 두 군데 있고, 동생이 요즘들어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쪽 화장실을 사용한다는것이다. 그것도 저녁에 운동을 하고 난 다음에만.


태건이네 집의 화장실은 거실에 하나 있고 안방에 하나 있는것으로 기억한다.

거실 쪽 화장실은 집 현관문 바로 앞에 붙어있어서,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면 그대로 점프해서 화장실에 들어가는게 가능하다.


대,소변이면 몰라도 사춘기 여중생이 샤워를 한다면 바깥쪽에 있는 거실 화장실이 아니라 집 안쪽에 있는 안방쪽 화장실을 사용하는게 일반적이겠지.


"운동장에서 보통 몇분간 운동을 하는데?"


내가 물었다.

머릿속에서 대충 윤곽이 그려진다.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대로라면......


"3분정도? 매일 스트레칭하고 요가하고 그리고 저녁에는 운동장에서 달리기하고... 공부에 관심 좀 가지지"

태건이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했다.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해야하는건 맞아. 그 나이때엔 항상 반항하고 싶어하니까."


"어? 내 동생 엄청 착한데? 중학교 3학년인데 아직도 사춘기스러운 행동은 하나도 안하던데?"


"그건 네 생각이고. 네 동생은 담배를 핀단말이다 이 바보 멍청아"





순간 태건이의 얼굴이 얼어붙은듯 했다.

"담배..? 갑자기 왠 담배..?"


나는 머릿속을 잠시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자신이 해답을 이끌어내는것보다, 타인에게 자신이 이끌어낸 해답을 설명하는게 훨씬 어렵다.


일상에대한 색다른 해석은 자신있지만,

조리있게 말하는건 자신이 없는데...


"...운동장에서 3분은 너무 짧은시간 아니냐? 그 시간이면 운동장에 도착하고 곧 돌아가야할 시간이란말이야"



태건이가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계속 설명해보라는 눈치다.


이러면 이쪽은 설명하기 편해진다. 이야기를 할때, 자꾸 치고들어오는 타입보다 태건이처럼 묵묵히 일단 듣고보는 스타일이 좋다.


"게다가 네 동생은 이미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몸매를 가꾸고있는데, 왜 갑자기 이제와서 운동장을 뛸 필요가 있겠냐고."


태건이의 동생은 이미 요가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거기에 운동을 추가한다면 스쿼트같은 운동을 추가했겠지, 운동장에서 3분 찔끔 시간을 보내는 걸 추가하지는 않았을거다.


그말인즉슨....


"결국 네 동생이 매일 저녁 운동장에 가는건,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지."


내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몸매를 관리하는것을 제외하고, 운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있지?"


"...건강해지는거?"


가끔 이녀석은 바보같은 소리를 한다.

내가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중학교 3학년생이 벌써 건강을 챙기겠냐"


"하긴.."


"운동을 하고나면 샤워를 하지"


녀석이 뭔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녀석은 시스콘이다. 날 여동생을 노리는 변태마냥 처다보는구나.


"당연하잖아! 운동하면 샤워하는게 이상하냐"

그리고 덧붙였다.


"...샤워를 하면 냄새가 지워지지"






요가와 스트레칭은 모두 실내운동이다. 태건이의 여동생은 평소 실내운동을 하는 아이라고 모두 알고 있다. 오빠조차 실내에서 운동하던 여동생이 매일 저녁 운동장으로 나가니까 걱정이되서 친구인 나에게 상담해왔다.


그런데 왜 굳이 운동장에 나가는 운동을 위장으로 삼았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집안에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 하고싶기에 운동장으로 나간거다.



"운동장에 운동하러 나가는게 아니라면, 집안에서 할 수 없는 행동이 하고싶으니까 운동장에 나가는거 아니겠냐. 3분만에 친구 만나는것도 아니고.


동생이 거실쪽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다고 했지? 동생입장에선 어쩔 수 가 없어.

안방까지 가다가 냄새때문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가까운 화장실에 들어가서 냄새를 씻어내버리고 싶은거야.


동생이 운동장에 나가기전에 미리 옷가지를 화장실앞에 준비해놓는다고 네가 말했지? 그건 동생이 이상해진게 아니라, 샤워를 마친다음 바로 냄새가 안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서 그랬던거지."



태건이가 낮은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 담배 필 때 입은 옷은? 그 옷에서 나는 냄새는?"


"너네 집에서 네 동생이 빨래를 도맡아하는데,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냐."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도서관 열람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각자 공부를 했다.



다음 날.

전날 풀었던 문제집들을 채점하고 있었다.



"...네 말이 맞더라."


어이쿠야?


"...동생 가방에서 담배 찾아냈다...미친"





사실 전날에 이야기를 할때, 이야기속에 보이던 단서들을 짚어내서 그냥 그럴듯한 설명으로 연결시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답이라니.

의외의 해석이 의외로 정답일때도 있구나.


내가 내놓는 해석들은 보통 '우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런데 틀렸어'라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데.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이 바로 이건가.

오늘은 기쁘게 잠들수 있을것 같다!





상대적 친고죄의 경우 신분관계가 있는 자에 대한 고소취소는 비신분자에게도 효력이 있다.(  O  )



하지만 고민하던 문제의 정답은 X였다.











=================================

실화입니다.

추리소설 매니아인데, 일상의 온갖것들에 관해서 추리해보는게? 취미이자 습관이지요.

그래서 항상 기이하고 특이한? 해석을 꺼내놓지만, 일상은 소설이 아닌지라 빗나갈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들어주지요.

친구들은 저를 추리꾼이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취급합니다.


이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로, 저렇게 쉬운 해답을 왜 친구가 생각해내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있지만 (그도 알고있었던것 같기도 합니다/ )


아무튼 제가 꺼낸 해석이 진상과 일치한 사건중 하나입니다.

몇번인가 그랬던 적이 있는데, 앞으로 하나씩 소설화(...)해서 올려보겠습니다. 이거 재밌네요!

  • decca 2015.11.23 08:19
    오 재미있네요. 소설적인 구성을 조금만 갖추면 연작 단편으로 만들 수도 있겠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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