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표(時代のしるし) 시리즈는 아사히 신문 석간 문예비평란에 실렸던 기획으로, 예술문화계 인사들로부터 작품을 통해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기획입니다.
여기서는 추리소설가인 하세 세이슈, 다카무라 가오루, 쿠로카와 히로유키, 니시무라 교타로, 시마다 소지, 아카가와 지로의 인터뷰만 소개할 예정입니다.
2018년 3월 28일자 인터뷰입니다. 출처 링크
가부키쵸의 혼돈 속에서 살았다 하세 세이슈(馳星周) <불야성(不夜城)>
카부키쵸,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대학에 들어가면서 상경하고, 골든 거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게 1980년대, 버블 전야였으니까요. 팬티 한장인 남자가 옥상 위에서 도망다니거나, 누군가가 골목에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거나, 여긴 뭐하는덴가 처음엔 놀랐는데, 그래도 금방 익숙해졌지.
엉망진창이고 혼돈스러웠지만, 즐거웠어. 무질서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지. 이러쿵 저러쿵 해도, 일상생활은 질서 속에서 살고 있잖아. 긴자라던가 롯폰기와는 달리, 가부키쵸는 무질서하고 외설스럽고, 그런 곳에 소속되어 있는게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프리라이터였는데, 버블 붕괴의 여파나 뭐 그런거려나, 연수입의 절반 정도는 차지하던 잡지가 망한거야. 또 영업한다고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았고, 그래도 뭔가를 쓰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자각도 있었고, 그래서 한번 진심으로 소설을 써보자해서. 그게 <불야성>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버블이 붕괴하고 경제는 커녕, 앞으로 일본은 대체 어떻게 되는거냐라는 공기가 만연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중국이나 동남 아시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아직 천국같은 나라였기 때문에, 가부키쵸같은 곳에는 점점 외국인이 들어왔지. 불법지대라며 뒷 세계로 가는 사람들도 있어. 그런 상황을 배경 삼아 썼던겁니다.
매일같이 가부키쵸에서 미치도록 마셨으니까, 거리의 공기가 바뀐 건 알았습니다. 물론 내가 갈 법한 싸구려 술집은 변함이 없어, 버블 무렵에도 버블이 끝난 뒤에도. 그래도, 온 거리에 외국어가 유난히 많이 들리기 시작해서. 택시 티켓을 써서 밤 새도록 놀던 직장인이 막차를 타고 귀가하게 되고, 그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무국적지대처럼 변했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쓰면 좋을까, 그런 망설임은 없었지. 그때까지 미칠 정도로 소설을 읽고, 그게 피와 살이 되었으니까, 기존 작가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만을 전부 해소하는 걸 써보자, 그런 거창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건 진짜, 뻥이지? 싶은 느낌. 남일이나 다름없었죠. 작품에 자신감은 있었으니까 일부에서 좋은 평가는 받겠지란 생각은 했는데, 일본의 독자들에게 그렇게나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도 하지만, 공감을 못 한다고? 라고 나는 오히려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소위 느와르라 불리는 소설은 당시 일본에는 없었지만, 해외에는 이미 있었지. 그때까지 하드보일드니 모험소설이니 하는 내용이 아니라도,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는 있고, 반대로 이런 이야기 쪽이 깊은 절망이나, 거창하게 말하자면 살아가는 것의 슬픔이나 그런게 전해질 거라 생각했어서.
당시에는 희망따위는 믿지 않았습니다. 30대 무렵의 나는 시건방졌던거죠. 사람은 모두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소설도 그런 걸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라는 걸 믿고 있어요.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2010년부터 등산을 시작했는데, 같이 산을 오르는 상대와는 서로 목숨을 맡기고 있다는 감각이 있거든요.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희망이라 생각해요. <푸른 산봉우리(蒼き山嶺)>에서는, 서로 목숨을 맏기는 인연같은걸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노력하면 보답을 받는다던가, 그런 안이한 희망은 물론 지금도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가부키쵸 근처에는 전혀 안 가게 되었습니다. 06년에 카루이자와에 이사를 오고, 지금은 도쿄에 가는 일 자체가 별로 없어. 코마 극장이 없어진다는 걸 뉴스에서 들은건 몇년 전이더라, 그게 좀 충격적이었어. 가부키쵸에서 코마가 없어지면 안되지, 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역시나 변하기 마련이구나 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