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선택적 지각
용사, 도적동료의 도움을 받다
수요일 밤에 다시 나이트클럽에 왔다. 안에 있는 이 클럽을 찾아온 외부인 중에서 찾을 것이다. 클럽 입구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벌써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귀에 울린다. 어두운 회장 안에 들어가니 테이블을 채운 많은 사람들과 화려한 사이키델릭 조명아래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은 직접 와본 경험이 없어서 분위기가 매우 낯설었다. 무엇보다도 어두운 가운데 울려 퍼지는 댄스 음악이 특히 시끄러워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리저리 비추는 화려한 조명 때문인지 상당히 현란하게 보였다.
일단 어수선한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알맞은 자리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행이 있냐고 묻는 웨이터에게 조금 있다가 올 거라고 둘러댔다.
고찰해본다. 단지 이곳에 나타났었던 사람이고 형을 알고 있는 것 외에는 그 자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찾아 낼 것인가. 이 많은 사람들에게 형을 아냐고 일일이 물어 볼 수도 없다. 잠시 조용한 시간에 마이크를 이용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죽은 형과 관련된 자신을 찾고 있다면, 그것도 자신이 그 일에 가해자나 마찬가지 입장에 서 있는 것이라면 절대 답해줄 리가 없다. 나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그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내 존재도 감추고 그 사람이 누군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게 알아내야만 한다.
이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에 골몰했다. 플로어 테이블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이 소란스러운 음악소리 가운데서도 서로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음악소리가 크기 때문에 자연 그들의 목소리도 크다. 잘 안 들린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도 보인다. 무대 위에서도 귀청을 때리는 음악소리 아래 댄스를 추면서도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알듯하다. 이 큰 뮤직사운드 중심에서도 대화가 가능한 이유. 그것을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하던가. 이 효과를 설명하는 글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보고 들을 수는 없는데 그것은 정보 처리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처리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파티 장, 나이트클럽, 시끄러운 공사장에서도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 자기에게 의미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현상을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고 한다.
칵테일파티 장에서도 많은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지만 의식되는 정보는 별로 없다. 그러다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리면 돌아보는 현상도 일종의 선택적 지각이다. 특히 칵테일파티 장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선택적 지각 현상을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는 감각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감각기억은 다시 청각에서 일어나는 잔향기억과 시각에서 일어나는 영상기억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도 칵테일파티 효과는 잔향기억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시끄러운 나이트클럽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잔향기억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 그대로 이 나이트클럽에서의 사람들 대화도 이 칵테일 파티효과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그 와중에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려도 돌아보는 현상이 일종의 선택적 지각 때문이라는 설명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의미는 큰 소음에도 자기가 집중하는 상대와의 대화소리가 아닌 전혀 의식하지 못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TV를 보고 있거나, 책을 읽든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는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라 했을 때, 어떤 자신의 관심을 끄는 화제가 나왔을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때와 같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자기 이름 같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라는 것.
뭔가 힌트가 되는 말로 여겨지나 난 상대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다. 상대의 이름만큼 의미가 되는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말로 그자의 주의를 돌리고 이쪽으로 불러들일 수만 있으면 된다. 오직 그자에게만 관심을 끌 수 있는 말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흘려듣게 되면서 내가 특정한 사내의 귀에만 저절로 들리게 되는 말.
있다. 그와 나와의 단 하나의 접점.
형이다. 형의 이름이다. 지금 이 큰 음악소리에서 그자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말은 형의 이름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무시당하면서 오직 그자에게만 중요한 의미가 될 형의 이름. 방법은 찾았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곳에 있느냐하는 것.
일단 찾아 봐야 한다. 내가 할 수는 없고 대리자에게 시켜야 한다. 웨이터에게 부탁하는 것도 맞지 않다. 저 춤추는 무리에 웨이터의 복장은 튀고 그가 사람을 찾는 소리를 부르면 누구라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자연스레 저 춤추는 무리에 녹아들어가 그 무리 속에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듯 해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 부탁을 할지 망설여진다. 직접 하지 못하고 부탁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며 이런 부탁을 선뜻 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돈을 주고 부탁을 하면 응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잠시 일행들이 화장실에 가거나 춤을 추고 있어 혼자 테이블을 지키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부탁을 하자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다. 대신에 만원 한 장을 내밀었는데도 거절당했다. 돈이면 누구든 부탁을 받아줄 것이라는 것은 나의 오산인가.
다른 사람에게도 실행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돈의 액수가 문제인가. 지금 현재 가지고 나온 돈도 없을뿐더러 그만한 일로 많은 돈을 주는 것도 오히려 더 수상하게 보일만한 짓이다. 애당초 처음 보는 남에게 자연스런 연기를 기대하기도 힘든 일.
‘!!!’
뇌에 전구가 들어왔다. 나에게는 이 일에 적절한 대리자가 이미 있었다. 이미 안면이 있고 작은 돈이면 이정도 부탁은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게다가 연기력까지 겸비해 안성맞춤이었다. 진작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휴대전화를 꺼내려 주머니를 뒤졌지만 놓고 온 것을 알았다. 전화번호도 기억하고 있지 않기에 오늘은 이만 물러나기로 한다. 다만 현재 이 안에 그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아쉬움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일주일이 지난 수요일 밤9시. 조수석에 한사람을 태우고 그 나이트클럽으로 향하고 있다.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던 젊은이가 귀에서 이어폰을 제거하고 옆에서 말을 걸어온다.
“아참, 형님 이름이 뭐라고 했죠?”
“헌. 성은 ‘심’으로 하고. 까먹지 말도록 해.”
“아, ‘헌’이라고 했지. 심헌.”
젊은이는 다시금 이름을 반복한다. 형의 성인 ‘이’외에 아무 성이나 갖다 붙여도 되지만 즉답할 수 있게 드문 ‘심’으로 정했다.
“다시 말하지만 자연스레 친구를 부르듯이 해야 돼.”
“헌아!, 헌아! 하고 말이죠?”
“너한텐 저번 때보다도 더 쉬운 일이잖아.”
조수석의 이 젊은이는 게임 때 도박판에서 나온 사내들을 꼬여내는 나의 심부름을 제대로 해준 바로 그 젊은이였다. 전화를 해서 일의 부탁을 하자 바로 OK를 해주었다. 물론 공짜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너 연기라도 전공한 거야?”
“연기력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던데요.”
“저번의 일은 대사도 많았잖아. 그런데 빠른 시간에 많이 물어다 줬는걸.”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그보다 이번에는 뭣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신호가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춘다.
“내 나름에 중요한 사정이 있다.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마라.”
“하지만 도박 건도 그렇고 시키는 일이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너는 도와주고 있잖아?”
“보답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만요.”
신호가 바뀌어 엑셀을 밟고 차를 전진시킨다.
“내키는 일은 아니어도 아저씨가 나쁜 사람 같지가 않아서 그저 믿고 하는 것뿐이에요.”
“자세히 안 캐묻는 점도 마음에 들어.”
“누구나 사정이 있는 거겠죠.”
사실 나도 궁금한 점은 있다. 대학생 같기는 한데 언제든 요청만하면 시간에 구애 없이 일에 협력한다. 휴학중이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학생도 아니고 무직상태인가. 이런 일을 하는 것 보면 돈에도 크게 구애 받는 걸로 보이진 않는데.
처음에 자세히 묻지 않은 건 내 부탁만 제대로 이행해 준다면 상관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또 만나 보니 이 녀석의 신상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나도 나에 대해 함구하는 형편이니 딱히 캐물을 수도 없다. 이 친구도 자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 하고.
어느새 목적지에 이르렀다.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면서 이 녀석이 미성년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고등학생으로 봤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녀석을 만난 것은 어느 패스트푸드점 앞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모자를 쓴 차림으로 패스트푸드 가게 밖에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모집포스터를 보고 서 있더니 결심을 한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몇 분되기도 전에 퇴짜를 맞았는지 금방 도로 나왔고 마침 심부름꾼이 필요했던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냐?”
의외의 인물의 출현에 그다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쳐다봤다.
“왜요?”
“일자리 구하기 전에 돈이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뭘요?”
은근히 대답이 짧구나, 요 녀석.
“서서 얘기하기 뭐하니 잠시 여기 들어가자.”
“됐어요.”
본론으로 들어가지 전에 실패인가. 그런데 녀석이 엄지손가락으로 아르바이트포스터를 가리킨다. 무슨 뜻이지? 하고 물으려다가,
“그렇지. 들어가긴 좀 그렇겠군.”
“들어가기 전에 나보고 있는 것 봤거든요.”
내가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새삼 놀란다. 이쪽을 본 기척은 전혀 없었는데.
금방 면접을 퇴짜 맞은 곳에 들어가기는 그래서 밖의 테라스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언젠가 이런 테라스에 테이블을 놓는 것은 불법이란 이야기를 고발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여기에서 일하고 싶은 거야?”
“그냥 한번 들어가 봤어요.”
“뭐라고 하든?”
“사람 구했다는데요.”
녀석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러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네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무슨 말이죠?”
“사람 구하고 있는데도 그런 식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더라고. 마음에 안 들면.”
“그랬단 말이죠. 왜 그랬지?”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여유가 있는 타입인가 보다.
“일자리 구하는개 급하지 않으면 내 일 좀 도와줄래? 무보수는 아니니까.”
“이야기나 들어보죠?”
대답하는 방식은 그리 예의 바르지 않아 보이는 데도 건방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내 게임에 심부름꾼으로서의 일을 대강 설명한다. 설명을 하면서 일의 실체에 도박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자 녀석의 표정에 심각함이 깃든다.
“다소 일반적인 일은 아니니 약속한 보수에 대해선 반드시 지불할게.”
“좋아요. 해보죠.”
뜻밖에 대답이 쉽게 나와서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은 아닌가했다. 하지만 실전에서 내 부흥에 기대를 해주었고 그래서 이렇게 그에게 또 한 번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나와 녀석은 나이트클럽에 들어갔다. 역시나 들리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뚫고 테이블에 앉았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젊은이가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들 속으로 섞이었다. 젊은이는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옆의 사람과 말하듯 “헌아”하고 부른다. 자리를 이동하면서 거듭 이름을 부른다. 소란스런 음악소리 가운데서도 무심코 그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은 사람이 있어, 고개를 돌려 슬쩍 쳐다볼 만한데도 모두들 춤과 음악소리에 빠져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의 목소리이니 들렸어도 무관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젊은이는 계속 무대 위에서 다른 자리로 옮기면서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 도중에 다른 댄스음악으로 바뀌고 댄스플로어를 돌 만큼 돌았는데도 자신에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가만히 있는 것도 어색해 살짝살짝 춤을 추는 흉내를 내며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테이블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을 남자는 자신의 연기력보다도 누군가 접근해올지에 대해 시선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댄스음악이 잠시 그치자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서 내려간다. 젊은이도 이때에 맞춰 후퇴할 마음이 들었는지 그들을 따라 내려간다. 그때,
“잠깐!”
젊은이가 돌아본다. 테이블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남자의 눈도 뭔가 캐치했다는 눈빛으로 바뀐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낸다. 젊은이에게 다가온 여자가
“아까부터 헌이를 찾던데.”
“네, 그랬는데요?
“혹시 김헌?”
“아니요. 심헌이요.”
“아, 난 또 내 친구이름과 같기에.”
그러고서 방향을 돌리고서 다른 테이블 쪽으로 가버린다. 젊은이도 반대쪽의 일행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간다.
녀석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듣고 추측한다. 공교롭게 형의 이름을 듣고 반응한 것이 성이 다른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를 둔 자였다니. 미리 형의 이름만 듣고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이헌’이라 하지 않고 ‘심헌’이라 말해 놓으라고 정해 놨지만 관계없는 사람이 걸려들다니.
설마 ‘헌’이란 이름의 친구를 둔 사람을 이 현장에서 보다니 기가 막힌 우연이다. 아무래도 헛물켜는 수고를 하고 있나보다. 이전에 형이 여기서 만난 사람을 거의 1년이 지난 현재 다시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볼 수 있다고 추정한 것은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별수 없이 나이트클럽에서 빠져나와서 녀석에게 수고비를 주고 만났던 곳까지 데려다 준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에 다시 사고해 본다. 이대로 형의 도박과의 접점은 사라지는 것인가. 뭔가 더 없는 건가. 1년 전 수요일 밤9시 이후에 나이트클럽에 자주 갔던 일이 지금으로서는 도박의 일과 관련 있어 보이는 단 하나의 단서인데.
‘칵테일파티 효과’내지 ‘선택적 지각’을 이용한 방법을 떠올렸을 때만 해도 상대를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기대했는데, 현장에 그 상대가 있어야 된다는 전제조건조차 성립이 안 된 상황이었나 보다. 이 방법에 엉뚱한 사람이 걸려 실망만을 안겨주다니.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은 녀석에게 말 걸은 여자가 녀석이 투입 된지 한참 지나 내려올 때 다가온 것인데, 왜 한창 목소리를 들었을 무대 위에서 바로 말 걸지 않았지?
그리고 친구 이름인줄 알고 그랬다는데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그 이름이 성은 다르나 형과 같은 ‘헌’이라 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형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거나 들은 적은 오직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가수 중에 딱 한명 알고 있다. 그만큼 외자에 ‘헌’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드문 것이다. 전국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거의 없다고 여기는 만큼, 실제로 우리나라에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존재할지. 어디서 알아볼 수 있을까.
몸을 일으켜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의 전원을 켰다. 케이블 모뎀의 스위치도 올린다. 모니터는 구식 CRT모니터. 많이 저렴해진 얇고 가벼운 LCD가 대세인데 그냥 CRT모니터로 쓰고 있다.
‘같은 이름 몇 명’이란 문장으로 검색해보니 지식인에 보통 ‘나와 같은 이름은 몇 명이나 있을까요?’란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다. 대표적으로 흔한 이름과 드문 이름이 각각 몇 명인지 적어서 올라온 답 글이 있는데 ‘헌’이란 이름은 없다. 그리고 밑에는 전화번호부를 찾아 보라고 하는데, ‘단 전화 소유자 이름만 나와 있고, 전화가 없는 사람이거나 전화번호가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되지 않는 미성년자등의 이름은 없어 정확하지 않다’라고 돼있다.
위의 글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람 이름이 많이 실린 전화번호부라면 대충 몇 명 정도 같은 이름을 가진 성인이 있는지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에 없을뿐더러 요새 찾기 힘든 공중전화부스에 가려고 나간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상호전화번호부는 많이 봤지만 인명전화번호부는 없을 수 있다.
마침 ‘같은 이름이 몇 명인지 알 수 있는 사이트’에 대해 묻는 글도 있어 답 글을 보니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넷전화번호부를 검색해 보라고 돼있다. 잘됐다 싶어 그 사이트에 마련된 인터넷전화번호부에 들어가 ‘헌’을 쳐보니 ‘헌’자가 들어간 업종, 상호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인명검색은 어떻게 하지? 하고 조금 헤맨 후에 찾게 되어 다시 ‘헌’을 넣고 엔터를 쳤다.
◎ 헌 02-XXX-XXXX 서울특별시 XX구 XX동
◎ 헌 02-XXX-XXXX 서울특별시 XX구 XX동
● 헌 031-XXX-XXXX 경기도 XX시 XX동
헌○○ 054-XXX-XXXX 경상북도 XX군 XX면
헌병대대 033-XXX-XXXX 강원도 XX시 XX동
헌○○ 053-XXX-XXXX 대구광역시 X구 XX동
헌○○ 051-XXX-XXXX 부산광역시 XX구 XX동
헌○○ 032-XXX-XXXX 인천광역시 XX구 XX동
헌○PC방 062-XXX-XXXX 광주광역시 X구 XX동
9개의 결과가 나왔는데 '헌'성을 가진 이가 네 명, ‘헌’의 이름을 가진 이가 세 명 이었다. 인명검색인데도 헌병대대와 PC방이 나온 것이 의외였다. 분명히 여기에 나온 것이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공교롭게 같은 이름의 세 명 중에서 같은 성을 가진 이가 두 명이고 둘 다 서울에서 사는 것이 이채롭다. 이곳 결과만 따져서 전국에 세 명뿐인 사람 중에 두 명이 같은 지역에 있다니 놀랍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결과가 보여주듯이 예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도 ‘헌’이란 이름은 매우 드물다는 것. 어쩌면 인구가 많은 서울지역에서도 같은 이름이 단 두 명이라는 결과는 다른 지역은 한 명 내지는 없다고 봐야한다.
정리하면 동일인물이 아닌 ‘헌’이란 이름의 사람을 알고 있는 자를 같은 지역에서, 더구나 같은 시간대에 우연히 만나기란 계산 불가능할 정도의 확률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 여자가 말한 ‘헌’이란 사람은 정말일까? 가까이 있다면 만나고 싶을 정도다. 형과 같은 이름의 사람이라면. 이 지역에 ‘헌’이란 이름의 사람이 한 명이라 했을 때 그 사람은 고인이 된 우리 형이 맞다. 즉 이제 여기에 ‘헌’이란 이름은 없을 것이다. 여자가 말한 것은 우리 형이 틀림없다. 속인 것인가, 그 짧은 시간에? 약간의 인터벌이 있었지만.
수상한 것이 맞는 것인지 괜히 헛짚은 것인지 강한 확신이 안 선다.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닌가한다. 그래도 기댈 것은 이것뿐이다.
수요일 밤9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그 여자’가 아니면 더 이상 뒤로 이어질 단서가 없다. 다시 시도 한다고 했을 때 반응을 보인 것은 그 여자를 끝으로 전무할지 모른다.
2009.02.25 02:24
[창작] 가려진 10분의2, 지워진 10분의2 그리고 10분의1 - 2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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