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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백 어택

                                              용사, 던전에서 얻은 문서를 해독하고  
                                                      여마법사를 동료로 얻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20분경이었다. 어제는 집에 들어오니 새벽1시가 넘었다. 대충 씻고 소변을 본 후 물 한잔 마시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든 생각이라고는 맥주를 얼마만큼이나 마신건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간단히 식사까지 마치고 컴퓨터를 켰다. 그녀의 휴대전화는 내 것과 같은 회사제품이다.
USB케이블을 그녀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의 USB접속단자에 꽂아 연결시킨다. 그리고 나의 갖가지 프로그램을 넣어둔 폴더를 열고 전에 사용한 적 있는 프로그램을 찾는다.
파일이름을 몇 번이고 확인해도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사용하고 지워버린 건가. 폴더를 닫고 바탕화면의 휴지통을 본다. 휴지통은 버린 내용물이 있다는 표시의 아이콘으로 되어있다. 웬만하면 파일을 지울 때 휴지통에 버리지 않고 바로 삭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개중에 휴지통에 들어간 파일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 찾고 있는 프로그램도 거기 있을 행운을 바라며 휴지통을 더블 클릭해보니 100개 넘는 파일이 있다. 휴지통비우기를 한동안 안했더니 어느새 이정도 쌓인 건가.
100개 넘는 파일 중에 있길 바라며 스크롤해서 살펴보지만 찾는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사용한 후 바로 삭제하기로 사라진 것 같다.
귀찮지만 케이블모뎀을 켜고 익스플로러를 띄운다. 어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았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이트를 뒤진다. 어찌해서 전에 다운 받은 사이트를 찾아내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푸는 프로그램을 내려 받는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 까닭은 이전에 내 휴대전화의 쓰던 비밀번호를 바꾸다가 그만 번호를 까먹어 버려서 비밀번호를 푸는 방법을 찾다 알아내 사용한 적이 있어서이다.
실행파일은 모두 3개가 있는데 이 휴대전화 기종에 맞는 프로그램 파일을 선택해 실행하고 비밀번호 찾기를 클릭하니 1분도 안되어 해당 비밀번호가 떴다. 찾은 비밀번호를 외우고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잇는 USB케이블을 분리한다.
여자의 휴대전화에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사용가능한 상태가 된다. 먼저 통화목록을 장시간 살펴보나 형이 쓰던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는 보이지 않는다. 그때로부터 1년여가 흐른 상태라 통화목록에 남아있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이번에는 문자메시지로 넘어간다. 문자메시지에는 다량의 광고용 문자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도 형으로부터 온 메시지는 없다. 혹시 여자가 형에게 보낸 문자는 없을까?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 여자가 문자메시지를 보낸 횟수는 많지가 않다. 확인한 결과 주로 상대의 위치를 묻는 내용이고 날자는 가장 오래된 것이 금년 1월로 돼있다. 물론 형에게 보낸 것이 있을 수 없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전화번호도 겹치는 것이 없어 아마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휴대전화를 닫는다. 결과적으로 여자의 휴대전화에서 알아낸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시일이 너무 지난 탓이라 애초에 무리한 짓이었는지 모른다. 통화목록을 지웠거나 형과 연락을 주고받던 전화가 아니라 새로 마련한 전화일수도 있다.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개어 놓지 않은 이부자리에 눕는다. 다시 그 여자를 만나는 수밖에는 다른 해법이 없다. 어제의 사태로 보아서는 그 나이트클럽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문제다. 덤벙이와 늘 같이 다녔을 것 같은데 어제의 일로 사이가 틀어져 곤란하게 됐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친하게 지내 왔던 것을 보면 오랜 친구사이라 오래지 않아 오해가 풀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웨이브여자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주면 쉽게 풀릴 일이다.    휴대전화는 돌려주기로 마음먹고 있는 일이고 이 핑계로 여자와 형의 관계를 캐물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휴대전화를 돌려주려 해도 만나야 가능한 일이고, 만나려면 여자가 클럽에 나와야하고, 클럽에 나오려면 덤벙이와 오해가 풀려야하고, 오해를 풀려면 휴대전화를 돌려줘야 하고,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뫼비우스의 띠’인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원형을 만든 ‘우로보로스’ 또는 ‘요르문간드’인가? 어디가 먼저인지 순서가 꼬이고 꼬이는 악순환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왜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거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먼저 자기 휴대전화에 걸어서 확인해 보지 않나. 휴대전화가 없으니 집전화로 걸어봄직 한데 말이다.
덤벙이가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니 어차피 소용없는 짓이라 여긴 건가. 그것보다는 집에서 걸었는데 내가 벨소리를 못 들은 건가?
다시 돌이켜보니 틀린 생각이다. 연락을 했는데 내가 받지 않았으면 통화목록을 보자마자 부재중통화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역번호가 찍혔을 테고 그녀의 집 전화번호가 틀림없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됐어도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알게 되는 것이니 그녀와 만날 일은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텐데.
그녀와 대화로 풀어야 할일을 상황이 여의치 않자 휴대전화를 훔치게 되고, 휴대전화를 가져와보니 그녀와의 연결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그 당시는 그냥 넘기고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휴대전화번호를 물어서 이후에 다시 시도하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섣불리 그렇게 되리라고 단정하는 것도 오산이지만.
이리 되면 그녀의 연락을 마냥 기다려 볼까. 분명 연락은 하지 않을까.
그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숙고해보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보고 있자니 좋은 묘안이 떠올랐다. 그녀와 아는 사람에게 집 전화를 물어보자.
등록된 지인들의 연락처가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주운 사람이라 하고서 돌려주기 위해 그녀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구상해보니 이리 간단한 방법이 있다니.
다시 휴대전화를 열어 등록된 전화번호를 살펴본다.
‘이런, 황당한!’
등록된 몇 개의 목록을 보는 순간 몹시도 허탈해졌다.
‘집’이라고 명명된 전화번호가 있던 것이다. 완전히 허를 찔린 느낌이다.
집전화가 등록이 되어 있을 줄은 전혀 고려치 않았는데. 집 전화야 누구나 외우고 다니는 것 아닌가. 허망한 웃음이 나온다.
당연하다고 믿어야 할 것이 아닌가 보다. 집 전화를 외우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등록된 전화는 쉽게 단축번호로 통화할 수 있어서다. 역시나 단축번호 1번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끝에 집 전화는 알아냈다. 여자의 휴대전화로 여자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몇 번의 신호가 가도 받지 않기에 단념한다. 하긴 이 시간대면 일반인들이 집에 있을 리 만무하다. 여자도 자신의 근무지에 있는 거겠지. 여자가 근무처에서 언제 퇴근하는지 모르므로 저녁 6시 이후부터 연락을 취해보기로 한다.
저녁 6시 10분전에 통화를 시도해 봤다. 아직 집에 없는 듯 신호만 간다. 저녁식사를 한 후 7시경이 되어 다시 연락을 취한다. 몇 번 연결 음이 간 후에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난다. 드디어 받은 것인가.  
“여보세요?”
목소리를 들으니 그 여자 같다.
“요전에 클럽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어떻게 집 전화를 알죠?”
“오늘 그 클럽입구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다가
“그러죠. 몇 시에 만나죠?”
“1시간 후에 만나도록 하죠.”
“그럼 잠시 후에 뵐게요.”
무슨 일인가 물어 볼만한데 선뜻 응한 것은 내심 나를 만나길 원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30분후 여자의 휴대전화를 챙긴 후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로 차를 몬다.


7시 55분. 예의 나이트클럽 바깥 입구에서 여자를 기다린다. 12월의 기온치고는 그리 춥지 않다. 해가 갈수록 겨울 추위가 약해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반면에 여름은 더 더워지고 말이다. 지구의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 그 이유다.
이분쯤 지나 저만치서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웨이브여자를 본다. 입구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무슨 일이죠?”
“어디 조용한데서 얘기하죠.”
근처 카페로 이동한다. 자리를 잡고 마실 것을 주문한 후에 먼저 말을 꺼낸다.
“어제 저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고요?”
“그쪽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알고 있었다는 소린가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원래 커피를 잘 안 마신다. 그래서 그런지 커피를 조금이라도 마신 날에는 어김없이 잠을 제때 자지 못한다. 늘 마시는 사람들은 괜찮은 모양인데 나한테 는 카페인의 영향 때문인지 매번 그렇다.
“몇 주 전 클럽 무대 위에서 젊은 녀석이 어떤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닌 일 있죠?”
“맞아요.”
“그리고 그 애한테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보셨죠?”
“잘도 보고 있었네요.”
“죽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여자도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고 대화를 이어간다.
“어제 저한테 춤추는 것 봤다고 했죠.”
“제가 지켜본 건 녀석이었습니다.”
“왜요? 뭔가 수상 했나요?”
이제부터가 감추고 있던 것의 폭로이다.
“저랑 아는 사이거든요.”
“아는 사이라고요?”
“예. 제 심부름꾼입니다.”
“그리고요?”
“제가 그렇게 시킨 거랍니다.”
여자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래서 저를 우연히 보게 됐다는 말이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이헌을 아시죠?”
그 이름에 여자의 표정의 변화를 살핀다. 한순간 눈빛이 달라진 순간이 있음을 감지한다.
“이헌이 누구죠?”
“모른다고 하는 겁니까?”
“그 사람을 찾고 있나요?”
“아니요. 그 사람을 아는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보며
“왜 제가 그 사람을 안다고 여기죠?”
물증을 꺼내기 전까지는 끝까지 시치미를 뗄 참인가. 오기가 나서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 그 입에서 진실을 꺼내놓고야 말리라.  
“제가 왜 그렇게 여기고 있는지 당신이 추측해보시죠. 100%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세요.”
“그전에 그 사람이 누구고, 당신이 왜 그를 찾고 있는지부터 말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요?”   “제 형입니다.”  
“그 형 되시는 분이 어떻게 됐나요?”
“실종됐습니다.”
걱정되겠구나 하는 눈빛으로 살며시 나의 기색을 엿본다. 하지만 내가 본 그녀의 표정에서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래요. 형님 되시는 분을 알고 잘 알고 있어요.”
“이제야 털어놓는군요.”
나는 여자의 휴대전화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건넨다. 놀라는 표정을 기대했는데 무덤덤하다. 다만 돌려받은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다.
“별로 안 놀라시네요?”
“의심하고 있었거든요.”
전혀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해서 놀란다.
“어제는 전혀 그런 느낌 못 받았는데요?”
“집에 돌아와서 돌이켜보니 당신도 엄연한 용의자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래도 확증은 없잖아요?”
“시간을 물어본 건 고의로 그런 거죠? 맥주로 친구의 옷을 젖게 하기위해서. 당신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을 텐데.”
잠깐 흠칫했다. 어떻게 그게 일부러 한 짓임을 간파 한 거지? 보지도 않고 단지 말로 전해  들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일 뿐인데 그런 추측이 가능한가?
갑자기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어제 함께 하고 있을 동안에도 전혀 이런 면을 느끼지 못했다. 대화를 많이 안 나눈 탓도 있겠지만.
“그럼 내가 어떤 이유로 휴대전화를 훔쳤다고 생각하죠?”
“그야 나에 대해서나 형에 관한 단서를 얻으려 해서죠.”
“음, 그럼 막연한 의심의 정도만 있었을 뿐인데 내가 훔친 것이 정말로 밝혀졌는데도 너무 태연하잖아요. 오히려 내가 놀랄 정도예요.”
“그야 같이 있는 동안 당신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니까, 유일한 그 사고가 당신이 핀치에 몰려 고의로 일으킨 제스처일 가능성이 가장 큰 확률을 동반하고 있다고 봤거든요.”
무슨 얘기야? 왜 갑자기 이야기가 복잡해지지. 뭔가 여자의 말 속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해도 안 되고 뭔가 당하고 있다는 이 기분은 뭐지? 여자의 이야기 속에서 뭔가 이상한 부분이 분명 있었는데.  
다시금 되뇌어 보고 여자에게 부탁한다.
“좀 전에 한 말 그대로 다시 해주시겠어요?”
“다시요?”
“예, 뭔가 불협화음 같은 게 있었는데. 부탁합니다.”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듯 입으로 되뇌어보이고는
“같이 있는 동안 그쪽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니……”
“잠깐! 바로 거기! ‘내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의미죠?”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겠죠. 그래서 예정에 없던 일을 저지른 거고요.”
마치 일찍부터 뭔가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이 느낌은 뭐지?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는 이 느낌은 뭐란 말인가.
그때 내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누구지? 전화 올 데가 없는데?’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번호를 보니 녀석이었다. 갑자기 녀석에게서 연락이라니.
“너냐?”
“예. 지금 뭐하세요?”
“왜 전화했지?”
“지금 혼자 있는 거 아니죠?”
무슨 일로 전화해놓고 이상한 소리지?
“혼자는 아닌데, 무슨 일인데?”
“여자분 조심하세요.”
지금 여자와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는 거지? 혹시?
창밖을 쳐다본다. 길가에서 이쪽을 보고 전화하는 것은 아닐까했는데 밖에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너 장난하는 거지?”
“여자 분이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네요.”
눈앞을 바라보니 웨이브여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뭐야? 너 어디서 보고 있는 거야?”
“아저씨도 참. 왠지 내 목소리가 가깝게 들린단 느낌 안 드세요?”
녀석의 말에 신경써보니 실제로 매우 가까이서 들리는 느낌이다.
“여기 있잖아요.”
휴대전화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뒤 언저리에서 들린 목소리라 ‘홱’하고 뒤돌려 쳐다보니 녀석이 방긋 웃고 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언제 여기 있었어? 그것보다 네가 왜 여기 있지?”
“여기 온지 한참 됐어요. 누나도 이제 장난 그만두고요.”
뭣! 녀석과 앞의 여자가 아는 사이라도 되나?
“너 이 여자분 아는 거야? 그리고 장난이라니?”
바로 내 등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녀석이 우리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다. 여자가 말한다.
“미안해요. 당신을 조금 테스트하고 있었어요.”  
“테스트? 나를 테스트 했다고?”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라나. 클럽에서 아돌을 만난 것부터 해명하죠.”
“아돌?”
“제 이름이에요.”
이 녀석 이름이 아돌이구나. 특이한 이름이네. 여자는 이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구나.
“당신이 아돌과 제가 만난 것을 클럽에서 본 날. 그 이전부터 우리는 서로 알던 사이였어요.”
“그때가 처음 만난 게 아니라고? 그럼?”
“내가 레스토랑에 들어갔던 날 기억나죠. 아르바이트 면접 봤을 때요. 아저씨, 아니 이제 형이라고 부를게요. 이쪽도 누나라고 부르니까. 형하고 이야기 나누고 헤어졌을 때 이 누나가 나타났어요.”
내가 이 녀석과 만난 날, 이 여자도 만났단 말이야! 나하고 같은 기간 동안이나 아는 사이였다니.
“이제 어떻게 된 건지 다 말할게요. 당신이 짐작한 것처럼 오빠와 저는 사귀는 사이예요.”
오빠라고 지칭한 것은 우리 형이다. 역시나.
“언제부터죠?”
“작년 봄부터요. 처음 만난 곳도 그 나이트클럽이구요. 다른 친구와 함께 있었고 오빠도 회사동료들과 있었어요. 저도 오빠도 그때는 클럽에 처음이었어요. 어떻게 같이 자리를 하게 되었고 집에 갈 때도 같은 방향이라 이야기를 나눴죠.”
작년 봄부터 사귀었는데 나에게는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다니. 좀 야속하군.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 만나서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됐죠. 아시다시피 주로 평일에는 수요일에 그곳에서 오빠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말이죠. 당신 집근처까지 간 적이 있어요. 오빠가 사는 곳을 알고 싶다고 해서. 그때 밖에 나오는 당신을 보고 동생이라고 알려줬어요. 그러다 오빠와 연락이 끊긴 후 당신 집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당신이 나오는 것을 봤고요. 처음 봤을 때와 입고 있는 옷이 같았기에 얼굴도 알아볼 수 있었죠.”
“그리고서는 날 미행?”
“그럴 계획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빠의 동생분이라서 그랬던지 저절로 뒤를 쫓아가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둘을 본거죠. 아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듣고는 이상한 도박을 한다기에 걱정이 됐죠. 오빠가 실종된 때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건지. 그래서 아돌에게 당신과 접촉한대로 나에게 보고하기를 부탁했고요.”
“너, 뭔가 대가가 있었겠지?”
“뭐 양쪽에서 돈이 들어오니 저로선 사양할 필요가 없었죠.”
“넌 돈이면 어느 쪽 편도 없구나?”
이런 박쥐같은 놈이라니.
“그렇다면, 클럽에서 둘이 내 앞에서 만난 건 사전에 계획 돼있던 거란 말이야?”
물은 뒤에 덧붙여서
“잠깐, 그럴 시간이 안 되잖아. 내가 이 녀석과 만나서 바로 둘이 차타고 클럽에 온 건데 어떻게 입을 맞추었다는 거지? 클럽에 들어오고 나서도 난 녀석만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형이 불러서 형의 작전을 듣고 차에 타기 전에 제가 좀 떨어져서 통화하던 것 기억나세요?”
“그 통화가 이쪽과의 통화였단 말이구나. 그 잠시 틈에. 그러면 너는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었단 얘기잖아.”
맹랑한 녀석이었다. 처음에 아돌을 만났을 때는 퉁명스럽고 대답도 짧은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그때 통화 나눌 때는 간단히 그렇게만 하라고 아돌이 말했어요, 아돌한테 시킨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 설명을 들어서 알았지만요. 조금 놀랐어요. ‘선택적 지각’이니 ‘칵테일파티효과’니 하는 설명을 들었을 때 말이죠. 뭐 실제로 효과가 있는 작전인지는 솔직히 의문이었지만. 그런 방법을 구상해낸 자체는 기발하다고 생각했어요.”
망연자실이다. 내 나름대로는 기발하다고 생각한 작전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구나하고 좋아했는데 덫에 걸린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단 말이냐. 여자가 형의 이름을 아는 걸 감추려 순간적으로 성을 바꿔 다른 사람으로 말한 것에 조금 감탄한 것이 우습게 됐다.  
“짧은 시간에 맥주든 손에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을 이용한 재치는 더 기막혔고요.”
“그러면 어제 내가 그곳에 올 것도 어느 정도 예상했겠군요.”
“예상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웠죠. 아돌에게 들은 것이 있으니까.”
그러면 같이 만난 덤벙이 여자 이야기를 안 물어 볼 수 없다.
“그러면 당신도 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길 기다렸다는 건데 왜 일행을 데리고 왔죠? 그 덕분에 오히려 번거롭게 됐잖아요.”
“원래는 혼자 올 예정이었는데 그 친구가 중간에 끼어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좀 더 당신을 테스트하고 싶기도 해서 굳이 그 친구를 말리지 않은 거구요.”
“그 친구와 예전에 있던 일은?”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어제 의심한건 처음부터 당신이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그 사고를 일으켰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으니까.”
아돌이란 이름을 오늘에서야 안 녀석은 옆에서 진중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기력이 좋네요. 이 녀석도 그렇던데. 무서운 사람들이군요. 그럼 어제 친구는 괜히 상처만 받은 거네요.”
“낮에 전화해서 말해 줬어요. 처음부터 의심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그 애도 덤벙거리긴 해도 마음은 착해서 금방 풀어졌고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어서 속으로 낙인효과 들먹이며 너무나 당연히 덤벙이로 오해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한 내가 오해한 거였다.
“이 녀석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순전히 거짓연기였군요.”
“불쾌했다면 사과드릴게요.”
“아까부터 나를 테스트했다 하는데 이유가 뭐죠?”
“당신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전에 아돌과 제가 아는 사이란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고 하니 사진을 못 봤나 보네요.”
여자가 휴대전화를 만지고서 나에게 내민다.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에는 형과 함께 찍은 것도, 아돌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뭐 마실 것 좀 시켜주세요.”
“그래. 시원한 것으로 시키자.”
아돌의 요청에 그녀가 시원한 음료수를 주문한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집 전화까지는 알아냈는데 사진 볼 마음은 없었나 봐요?”
정말이다. 휴대전화의 사진을 본다는 것은 애초에 전혀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확인했으면 다짜고짜 아돌과의 관계를 캐물었겠지만.
“집 전화번호까지는 알아내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기다렸던 것 역시 테스트였군요. 그쪽에서 연락만 취하면 내겐 쉽게 풀리는 일이니까.”
잠시 한 템포 쉰 다음 결연히 묻는다.
“형이 실종된 것을 알고 있었다는데 왜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죠? 동생인 제가 있는 것도 알고 있었잖아요. 형의 애인치고는 이때까지의 행동에 모순이 있어요.”
여자가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낸다. 편지로 보였다.
“오빠와 연락이 안 돼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여겼을 때예요. 우편함에 이 편지가 있었는데…….”
편지를 건네받는다. 겉봉에는 주소도, 보낸 이도, 우표도 붙어있지 않은 깨끗한 상태다.
누군가 와서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속지를 꺼내어 펼쳐본다.

당분간 나를 찾지 말고 신변에도 문제가 없으니 걱정 말아요.
그럴 사정이 있어 잠시 모습을 감추는 거니까요.
절대 누구의 강요나 협박에 의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당신과 동생에게는 참 미안합니다.
너무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내년 12월경에 연락이 갈 겁니다.  
그때까지의 1년 동안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동생에게는 이 이야기와 편지 얘기도 하지 말아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절대 안전합니다.

“오빠의 필적이 맞고 스스로 쓴 게 틀림없어요. 전 편지 내용대로 믿기로 했고요. 자세한 사정은 이번 달에 온다는 연락을 기다려 봐야 될 것 같아요.”
“내용을 봐서는 형이 스스로 잠적했다는 건데, 그 사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저와 당신 앞에서 1년여 동안이나 모습을 감추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여자에 이어 아돌도 한마디 건넨다.
“아무튼 연락 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그런 사정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부탁할 일 있을 때도 어김없이 불러주시고요. 방학이니까 시간에 구애 받을 일 없거든요.”
형의 편지대로 이번 달에는 그저 어떤 식으로든 형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나 외에 형의 애인도 있고, 녀석의 도움도 기대할 수 있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 마음의 부담이 덜 해진 기분이다.
“그럼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그만 일어나죠.”
“헤어지기 전에 서로 이름이라도 알아둡시다. 그리고 댁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도 알아야 하고요.”
“제 이름은 ‘유아연’이에요. 전화번호는…….”
아연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녀가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른다. 바로 내 전화기가 울린다.
“그쪽 번호는 아돌한테 들어서 알아요. 그런데 당신 이름은 모르더군요.”
“나도 이녀석 이름은 오늘 알았어요. 내 이름은 ‘이 강’입니다.”
서로의 이름과 연락처도 알고 우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에서 나갔다. 그리고 아돌과 아연씨는 내 차에 같이 타고 집으로 오면서 도중에 그녀 먼저 내려줬다.
“오늘 여러모로 충격 받은 날이네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이제는 오빠만 있어주면 더 가깝게 될 거예요. 그럼 다음에 봐요.”
그녀는 나와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 보니 형이 사랑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잘 됐으면 좋겠는데.
차를 다시 출발시키고 아돌도 녀석의 집근처에서 내려준다. 얄미운 짓을 했지만 이 녀석과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딴다. 아까 말처럼 오늘은 나름대로 꽤 충격적인 날이다. 아연씨한테서 온 편지의 내용은 다소 수수께끼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다. 형의 사정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건지. 벌써 1년이 지나 편지에서 예고한 날에 가까운 때이다.
아연씨는 알고 있어서 1년 동안을 쭉 이때가 오기를 기다렸을 테고, 나는 아무 정보도 없이 기다리다보니 이때가 왔다. 단연 내 쪽이 훨씬 더 힘든 시간이었지만, 알면서도 1년을 기다린 연인의 심정도 나 못지않게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날자는 지나서 12월도 반도 안남은 22일이 되었다. 형이 말한 12월은 열흘도 안남은 시점. 정말 연락은 올 것인가, 그 안에 무슨 문제가 생겨 연락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슬슬 자라나기 시작한다.
낮 12시쯤이다. 아연씨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저 아연이에요. 왔어요! 오빠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옛! 언제요? 뭐라고 왔죠?”
“11시 40분경에 왔어요. 2시까지 ○○○역에 동생분과 함께 나와 있으라고요. 어디 여행갈 때처럼 짐을 꾸려서요. 그리고 차는 갖고 오지 말고 교통편을 이용해서 오라고요.”
“예? 그게 무슨 말이죠? 그리고 다른 건요?”
“이게 다에요. 아돌에게도 일단 연락온건 전해줄게요.”
“바로 형한테 전화해 봤나요?”
“메시지보고 바로 해봤는데 꺼 놓은 모양이에요.”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그럼 역 앞 광장에서 만나죠.”
드디어 연락이 왔다. 다행이고 안심이다. 적어도 형의 생존은 확실해진 셈이다. 허나 갑자기 온 연락은 난데없이 짐을 꾸리고 나오라는 내용. 어디 먼 곳에 있어 차마 오지는 못하고 불러내는 것인가. 아직도 궁금증은 여전하다.
일단 짐을 꾸리기 위해 가방을 찾아 속옷 몇 개, 여벌의 가벼운 옷과 세면도구, 양말 몇 켤레 등등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예측 할 수 없기에 되는대로 채워 넣었다. 돈도 충분히 지갑에 넣고 휴대전화 충전기도 챙긴다. 두꺼운 남색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전해준대로 차는 놓고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유 있게 도착하기 위해 일찍 나섰더니 역에 도착한 것은 1시 43분이다. 광장에서 역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부분 한편에 서서 아연씨가 오기를 기다린다. 5분쯤 지나서 광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아연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돌도 같이 있었다.
아연씨는 붉은 색의 점퍼에 안에는 흰색 폴라 티셔츠, 아래는 검은 바지에 캐주얼한 운동화를 신었고 등산용 가방을 양어깨에 매고 있다. 아돌은 늘 쓰고 나오는 파란모자에 베이지색점퍼를 입고 그 안에 녹색조끼, 갈색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가방은 한쪽어깨에 매고 있다.  
“너 까지 나온 거야?”
“여행가는 셈치고 따라나서기로 했어요.”
“짐은 충분히 꾸린 거죠?”
아연씨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다. 여기에 형이 나타날 것인지, 다른 사람이 나타나 형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 줄지는 몇 분만 기다리면 된다.
“저기, 형에게 온 메시지 좀 보여줄래요?”
“여기요.”
아연씨가 준 휴대전화로 형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연씨가 전해준 내용 그대로이다.
15분 넘게 시간이 흘러서
“2시도 넘었는데 아무도 안 나타나지?”
“좀 더 기다려 봐요.”
한 5분쯤 더 기다리자 저 앞에서부터 검은 양복의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느낌이 저 사람인가 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어느새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남자는 키가 180정도로 큰 키에 세로로 긴 각진 얼굴의 형태를 하고 있다. 나이는 대략 많이 봐야 30 중반정도로 보인다. 사내가 말한다.  
“이쪽 분이 이헌씨 동생 되십니까?”
나를 가리키며 묻는다.
“제가 동생입니다.”
“일행은 2명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는 사이라 같이 왔어요.”
아돌이 설마 여기 놔두고 가진 않겠지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상관없겠죠. 저를 따라오시기 전에 일단 화장실에 다녀오도록 하시죠. 차타고 가는데 오래 걸립니다.”
“얼마나 걸리죠?”
“4시간 정도.”
“그럼 다 볼일보고 오도록 하자.”
셋은 역 안의 화장실로 직행한다. 다시 원래 자리에 모이고
“그럼 따라오시죠.”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구나. 왠지 딱딱한 성격으로 보이는걸.’
그를 따라가니 도로에 면해 있는 한쪽 귀퉁이에 9인승 승합차가 서있다.
“타시죠.”
마주보게끔 자리 배치한 좌석에 내가 앉고, 반대편에 아연씨와 아돌이 함께 앉았다. 가방들은 빈자리에 같이 뒀다. 남자가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인다.  
“어디로 가는 거죠?”
“지방에서도 산길을 한참을 올라가는 곳입니다.”
“형은 누구랑 같이 있는 겁니까?”
“주인님을 뵙게 되면 놀랄 겁니다. 보던 얼굴이라서.”
운전수가 백미러를 살피며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요? 누구죠 그 사람이?”
“어차피 보게 되니까 기다리세요.”
“당신은 그 사람이 고용한 겁니까?”
“운전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니 도대체 누구일까. 전혀 감이 안 오는데.
우리가 향하는 곳에서 만나는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연속 살인. 추리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사건들. 엄청난 충격에 망연자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숨겨져 있던 사실들. 이 앞에 그런 사건들이 벌어지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짐작 못한 세 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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