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들어온다. 아직은 그림이 보이지 않지만 득의양양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아연씨와 아돌도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보낸다.
반면 주인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좋아, 그 웃음을 날려 보내주지.
“좋아. 불을 꺼!”
내 지시에 아돌이 전등스위치로 손을 뻗는다.
“딸 칵!”
순식간에 실내는 어둠의 공간으로 돌변하고 바닥에서는 반원과 그 중심에서 내 야광발자국들이 빛을 발한다. 손을 풀고 그 반원 안으로 걸어가는데
“앗!”
“아닛!”
갑자기 어둠속 공간에서 또 다른 야광 불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닥이 아닌 공중에 떠 있다.
“이럴 수가!”
“아아….”
“이런!”
이 놀람의 소리는 아연씨와 아돌에 나까지 같이 지른 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내 발자국만이지만, 공중에서도 빛을 내고 있는 것은 내 손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재미있는 조화라 할 수 있다. 바닥의 야광발자국과 공중의 야광손바닥. 하지만 상황은 전혀 재미있지가 않다.
“불을 켜겠습니다.”
담담한 주인의 목소리가 들린 후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빛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발자국과 내 손바닥에서의 빛은 사라져 있고 환희에 들떠 있어야 할 우리도 빛을 잃은 어린 양처럼 우두커니 서있다.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스스로도 납득을 못하는 거군요.”
“이게 아니었단 말이야?”
내가 재현을 시도할 때에, 양말을 벗고 다시 신는 과정 속에서 손에도 양말에 묻어있는 야광물질이 묻어버린 것이다. 바닥에 그려진 모양은 같지만 분명히 그 반원의 그림만 어둠속에서 나타나야한다. 내가 팔짱을 끼고 있는 잠시 동안은 손에 묻은 야광이 빛나지 않겠지만 그거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리라.
“양말이 아닙니까?"
“난 그때 맨발로 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끝나고서 양말을 신었을 뿐이죠. 나도 이것을 처음 재현할 때는 당신과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만들고 보니 손에 고스란히 양말의 야광물질이 묻어있던 거죠.”
아까의 의미심장한 웃음의 정체는 이것 때문이구나. 자신의 예전의 실수를 고스란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거다.
“내가 같은 실수를 하리라고 예상했었죠?”
“예상한 게 아니라 본겁니다. 양말에 바르는 것을.”
“봤다고요?”
“아까 내가 문을 닫으면서 살짝 당신 쪽을 보았거든요.”
맞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저들이 나가는 도중에 내가 그때부터 양말에 바르기 시작했다. 주인이 문을 닫으면서 본거구나.
“양말을 뒤집어 벗어서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뒤집어서?”
“네. 당신이 했던 방법이 실패로 드러나자 나도 실망이 말이 아니었죠. 이것저것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봤지만 도무지 묘안이 나지 않아서 다시 양말에 미련을 보이며 떠올린 방법이었는데.”
거기서 주인이 피식 웃는다. 왜 웃는지 아연씨가 알아차린다.
“다시 못 신은 거죠?”
“실연하는 과정에서 실패라는 것을 알았죠. 가운데 부분에서 다시 양말을 신으려니 뒤집어 벗은 양말을 다시 뒤집으려니 이번에도 야광물질을 바른 발바닥부분에 손을 대야만 하니까요. 역시나 실패죠.”
정말로 맨발에 바른 체 이 반원문제를 그려냈단 말인가. 끝 지점에서 가운데 지점으로 이동할 때 순간이동이라도 하지 않고 그 거리를 맨발로 걸으면 야광발자국이 안 남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이 방법이 있잖아요.”
“뭔데?”
아돌의 머리에서 무언가 번쩍했나 보다.
“양말을 한쪽만 벗는 거예요.”
“한쪽만?”
“조금 전 그대로 양말을 신은 체 야광물질을 바르죠. 그래서 반원을 그릴 때는 두 발로 걷다가, 중심으로 갈 때는 한쪽 양말만 뒤집어 벗고 그 맨발을 디딤 발로, 양말을 벗지 않은 다른 발은 들고서 외다리자세로 이동하는 거죠. 중심에 왔을 때는 양쪽 발의 역할을 바꿔서 양말 벗은 발을 들고 야광발로 발자국을 만드는 거구요. 거꾸로 되돌아 올 때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되고요.”
아돌답게 기발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외다리로 건너가기라니. 그리도 연이어서 다른 방안도 떠올리더니
“이렇게도 되요. 이번에는 양말을 한쪽만 신는 거예요.”
“한쪽만 신는다고?”
“처음부터 양쪽 발에 신는 게 아니라 한발은 맨발, 한발은 양말을 신은 체 야광물질을 바르죠. 그래서 반원을 그릴 때는 두 발로 걷다가, 중심으로 갈 때는 양말을 뒤집어 벗고 맨발이 된 다리를 디딤 발로, 야광물질을 바른 맨발은 들고서 외다리자세로 이동하는 거죠. 중심에 왔을 때는 양쪽 발의 역할을 바꿔서 양말 벗은 발을 들고 야광발로 발자국을 만드는 거구요. 비슷한 맥락이긴 해도.”
어쨌든 참신한 방안들이긴 해도 이미 주인이 요구하는 방식에서는 벗어나 있는 게 안타까운 점이다. 이 외다리 건너뛰기 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것은 이미 앞에서 주인이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재현했기에.
“아쉽게도 그 아이디어는 채택불가여서 어쩌지. 재오씨는 맨발로만 만들었다고 했잖아.”
“어? 그렇구나.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네.”
이에 아연씨가 의견을 받아
“아돌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거지만, 그러면 처음부터 맨발로 한쪽에만 야광을 칠하고 도중에는 발을 바꾸면 그려지긴 하는데.”
“그러면 전부 외발자국만 남잖아요. 그리고 외다리로만 그리는 것도 할 수는 있겠지만 힘들고요. 우리가 본 그림과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인상도 들고요. 당신도 이 방식으로는 만족 못하겠죠?”
주인의 의견을 묻는다.
“좀 더 제가 원한 그림에 대해 정의를 다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하게 양쪽 발바닥의 발자국이 나야하며 맨발로 그려져야 합니다. 맨발이 아니라면 양말을 신은 상태도 그것을 벗지 않는 조건하에 납득하겠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우리 눈에 보여야 할 것은 저 반원과 그 중심의 야광발자국만이 빛나는 형태입니다. 그 외에 아까처럼 손에 묻는다든지 다른 곳에 묻으면 안 됩니다.”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연구해 보죠.”
“일반적으로 보지 말고 거꾸로도 보세요. 내가 저쪽 바닥부터 중심바닥까지 지나간 흔적은 숨어 있을 수도 있어요.”
‘지나간 흔적이 숨어 있어?’
이렇게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듯 별 소득 없이 끝난 반원문제 증명을 깨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의 객실 앞으로 돌아와서 내가 다시 제의한다.
“세 명의 머리가 모이면 반드시 답이 보일 거야. 그러니까 아직은 포기하지 말고 한 가지라도 방법을 유추해보자. 도출해 낸 답이 틀릴 거라고 여겨져도 같이 얘기를 나누고 보완하면 응용해서 푸는 법을 발견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노력해 볼게요.”
“나도요.”
방으로 들어가 잠깐 머리를 식힌다. 일단 텅 비우고 재가동해야 머리도 잘 돌아가게 될 것 같다. 그리고서 시간은 흘러간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침실 머리맡 에 있는 자명종의 시간을 바라보니 10시를 향해서 분침이 가고 있다. TV도 딱히 볼 만한 프로가 없어서 침실에서 간단한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을 여니 주인이었고 그 뒤에 아연씨와 아돌이 복도에 서 있다.
“무슨 일이세요?”
“아직도 캐츠씨가 안 돌아왔습니다.”
“아직도요?”
나도 생각보다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고 복도로 나간다.
“벌써 10시나 됐는데 아직도 룸에 없대요.”
“이거 정말 큰일이네.”
“늦은 시간이지만 일단 모두 휴게실로 가 계세요.”
아무래도 불길한 사태를 맞아 긴급회의를 소집하려나 보다. 우리는 휴게실로 향해 내려가고 주인은 2층으로 간다. 2층의 사람들도 불러 낼 참인가 보다.
먼저 휴게실에 들어가 있자니 주인과 스마일맨, 마마가 들어온다.
“다 모인 셈이군요. 윌리는 지금 자고 있으니까 제외하고 말입니다.”
주인 말처럼 어린 아이인 윌리는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알다시피 지금까지도 캐츠씨가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이 밤중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정말 어디서 사고라도 당한 거 아녀?”
스마일맨과 마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한다.
“나가서 한번 찾아봐야 되지 않을까요?”
“이런 밤중에요?”
네 제안에 아연씨가 내키지 않은 듯 소스라친다.
“찾더라도 지금 나가기는 꺼려지네요.”
“날이 밝을 때 찾읍시다. 내일 아침까지도 안 돌아온다면.”
아무래도 저택 일원 중에 한 사람의 행방이 묘연한지라 모두들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저마다 걱정이 담긴 말을 한마디씩 한다.
불현듯 떠오른 것은 이런 상황인지라 모두들 휴게실에 모여 있지만, 개인의 사정으로 지금 현재 이곳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형과 클라인환자의 동태였다. 그들은 현재의 이런 상황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낮부터 산행 팀에서 비롯된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주인을 통해서라도 느끼고 있었는지.
“정상 땅바닥에 SOS라고 쓰여 있어서 캐츠씨가 한 건 줄 알았거든요.”
“SOS라고?”
“네. 캐츠씨가 쓴 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글자가 있었어요.”
다들 이상한 표정이 돼버린다. 내가 말한다.
“그건 구조신호잖아. 캐츠씨가 그런 의미로 남긴 것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주 똑바로 쓰여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이 남긴 걸로 보기에도 좀 그런데 말입니다.”
스마일맨의 말도 신빙성은 있다. 다른 곳의 등산객이 찾아 올 산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블루캡은 무척 조용하네요.”
“많이 피곤해서 그래?”
주인의 지적에 아연씨가 편들듯 말한다. 하긴 아연씨도 아돌과 마찬가지로 캐츠씨 일로 고생해서 아직 피로는 남은 상태일 것이다.
“UFO에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닐까요?”
“진담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지?”
“이건 그냥 해본 소리고요. 사실은…….”
뭔가 말을 꺼내기가 힘든 듯 입을 다문다.
“뭔데? 할 말 있으면 해.”
“저, 이런 말하면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잠시 말을 끊고 좌중을 살펴본다.
“말해보시죠?”
주인이 다그친다. 아돌은 무슨 말인가를 내뱉고는 싶은데 망설여지나 보다.
“괜찮아. 말해봐.”
이번에는 내가 다그치자
“제가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나머지 머리에 깃든 견해인지는 모르겠어요.”
무슨 얘기지?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그런 데서는 지금과 같이 누군가 행방불명되거나 뭔가 일상과 다른 불길한 사태가 생겼거나 하면 어김없이 안 좋은 결과로 나중에 발견되거든요.”
“안 좋은 결과라니?”
모두들 아돌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다음 말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아돌도 자신이 내뱉을 말이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을 아는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연다.
“죽어서요.”
“뭣!”
“뭐라고?”
아돌이 보낸 파장은 이장소의 기운을 급속히 냉각시켜버린다.
“죽다니? 캐츠양이?”
“사고로 죽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
이에 대한 아돌의 답변은 더욱 강력한 제2의 파장으로 반사되어 돌아온다.
“사고일수도 있고, 살인일수도 있고요.”
“!!!!!”
“!!!!!!”
제2의 파장은 이곳의 분위기를 절대영도까지 얼려버린다.
“살인이라니?”
“그건 아니지.”
“아우, 무서워라.”
주인, 스마일맨, 마마 각각의 반응이다. 나와 아연씨는 아돌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 서둘러 반박할 타이밍을 놓친다. 어떤 근거로? 단지 추리소설에서 많이 봐온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아돌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냐.”
“당치도 않아.”
“그러면 정말 사고라고 단정하세요? 무슨 근거로요. 지금 여기서는 어떠한 가능성이라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요.”
맞는 말이지만 쉽사리 동의하기는 쉽지 않은 말이다. 누군가가 죽는다? 그것도 더구나 살인이라는 형태로. 살해, 살인은 그로 인해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한명 이상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것은 가해자, 즉 살인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누가 캐츠씨를 죽이겠어. 이 부근은 사람도 많지 않고 캐츠씨에게 뭔가 해코지 할 사람도, 이유도 없을 거야.”
“그래. 그거는 오버야. 내일이라도 돌아오겠지.”
“아니요.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 만약을 대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되요.”
아직까지 나와 아연씨는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다. 좀 더 그의 말을 듣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수색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이야긴가요?”
스마일맨과 주인의 물음에 아돌이 내놓는 우리가 해야 할 일. 그것은
“모두의 알리바이를 확인해야 해요.”
“!!!!”
“알리바이?”
아돌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정말 그 얘기로 진행이 될지 보고만 있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말은 우리 중에 살인자가 있다는 겁니까?”
“여기에 살인자가 있다고!”
더 이상 냉각된 분위기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단번에 급반전 시킬 수 있는 것은 캐츠씨의 등장일 뿐이다.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고.”
“이게 무슨 사단이라니. 괜히 무서워지잖아.”
마마가 정말 무서움을 느끼는 듯해 보인다.
“그럼 여러분들은 캐츠씨의 행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야 모르지.”
“어느 쪽일 거라고 짐작들 하냐고요? 가능성 있는 것은 모든 걸 떠올려 보세요.”
이제 나도 침묵을 깨고 이야기에 동참해야겠다.
“그래 한번 모든 가능성을 짚어보자. 사고를 당했거나, 그 사고 중에는 어디를 다쳤거나 해서 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 또는 유괴도 있을 수 있지. 네 말대로 살해당했을 경우도 있고.”
“그렇게 비관적인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어딘가로 가버렸을 수도 있어요. 이해는 가지 않지만.”
내가 입을 열자 아연씨도 동참한다.
“어디에 떨어져서 기억을 잃어버려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 있는 얘기죠.”
스마일맨도 가능성 하나를 내놓는다.
“그래도 분명히 어디 있을 거야. 그 처녀가 죽었다니 그럴 리 없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머니. 더구나 살인은 아니라고 봐요.”
“무엇보다 여기 있는 누가 그녀를 죽이겠습니까?”
주인의 말대로 그녀를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 여기 있는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는 건 이중에 살인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잖아.
“하지만 여기 사람 모두 그녀와는 남이잖아요. 가족 간에도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라고요.”
“젊은이는 너무 비약해서 추측하는군요. 남이라고 무조건 의심한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말이에요.”
이러다 정말 캐츠씨가 갑자기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아돌은 다른 사람들과 불편해질 수도 있는데 걱정이 된다. 그래도 캐츠씨가 아무 탈 없이 나타나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지만.
“분명 불쾌한 일이지만 블루캡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만약에 정말로 그런 일이 있다면 당연히 모두의 알리바이를 알아둬야 하니까요.”
“산에서부터 없어졌는데 여기 있는 사람을 조사할 필요가 있는지.”
주인이 아돌에 말에 어느 정도 협조적으로 나서는 데에 아연씨가 주저한다.
“그래도 캐츠씨와 근래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고 그 산 부근에도 이 저택이 제일 가까우니까 만약에 살인자가 있다면 여기 사람들 중에서도 가능해요.”
“아직 확인 되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살인으로 몰아가누.”
마마의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 자리에 윌리가 없는 게 다행이다.
“지금도 늦은 시간인데 이러면 결론이 안 납니다. 블루캡의 말대로 각자 알리바이를 대주세요.”
4화 알리바이
모험단, 수소문을 하다
역시 주인의 책임과 권한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핸섬맨이 결단을 내린다.
“어디다 적어 두는 게 나을 건데.”
내 말에 주인이 펜과 종이를 꺼내서 옆에 있는 아연씨에게 준다.
“저와 아연 누나가 캐츠 누나를 마지막으로 본 게 11시 40분정도였어요. 그렇죠?”
“맞아. 캐츠씨와 넷이서 중간에서 같이 쉬고 경주를 시작한 게 휴식 끝나고 바로니까 그 시간쯤 될 거야.”
“제가 먼저 말하죠. 11시 40분이면 오늘 점심을 1시에 했으니까 그때까지 저는 쉼터에 있었다가 룸으로 와서 시간에 맞춰 식사를 했습니다.”
주인이 먼저 자신의 행적을 밝힌다.
“점심을 1시에 했어요?”
“응. 오늘은 늦게 먹었어.”
특식이 나왔었다는 얘기는 이 분위기에서 할 필요 없겠지.
“그 이후는요?”
“어느 때까지 말해야 되지?”
“여기 모이기 전까지요. 부탁드려요.”
“식사 후에는 차를 몰고 밖에 나갔다가 5시 40분 정도에 들어왔어요. 저녁식사를 하고 쉼터에서 여러분과…… 아니지, 그전에 제가 3층 캐츠씨 객실에 그녀가 있나 확인했고 없어서 2층으로 내려왔죠. 아, 거기서 여기 세 분과 함께 제 쉼터에 갔었죠. 거기 나와서는 제 방에 있다가 다시 캐츠씨를 확인하러 갔는데 그때도 없어서 여러분을 여기 모이게 한 거죠.”
주인의 발언이 끝나고
“식사 때나 저희들과 있을 때 말고 알리바이가 있는 시간이 있나요?”
“그런 때 말고는 없는 것 같군요. 점심 전에 이강씨와 잠깐 복도에서 마주친 적도 있었군요. 그때가 언제였죠?”
“12시에서 20분 사이였을 겁니다.
스마일맨의 차례로 넘어간다.
“산에서 내려와서 여기 온 게 12시 10분 정도였던 것 같고, 식사하고 어머니와 윌리와 휴게실에서 3시까지 있었죠. 3시에는 같이 나가서 3시 40분쯤까지 어머니와 윌리와 늘 쉬는 곳에 있었어요. 방에 돌아와서 저녁때 식사하고 내방에 쭉 있다가 여기 오게 된 거죠.”
“산에서 내려왔을 때와 방에 있을 때는 알리바이가 없겠네요.”
“산에서 내려가는 건 라라씨와 블루캡이 봤잖아요.”
“그 시간대에 저택 안에 있던 사람들도 조사하는데 당신도 내려 온 건 혼자였으니 알리바이는 없는 거죠.”
“저녁때 방에 들어갈 때는 어머니가 봤어요.”
“들어갔을 때 본 것만으로는 알리바이성립이 안되죠. 어쨌건 여기 모이기 전까지는 혼자였으니까요.”
여기에 대해 스마일맨이 반론을 제기한다.
“아, 잠깐 어머니 룸에 간 적이 있었어요. 9시전에 가서 20분 정도 있다가 왔어요.”
“나는 방에 있다가 점심 먹고 가족과 휴게실에 있었어. 3시에 가족끼리 늘 쉬던 곳에서 있다가 40분 지나서 같이 올라왔지. 그 다음은 저녁식사 때 말고는 계속 방에만 있었지. 아들이 왔다 간 시간이 9시 17분인가 그랬어. 들어 온 건 8시50분에서 55분 사이였고. 내가 그때 시계를 봤거든.”
마마의 오늘 행적이다.
“윌리와 떨어져 있던 적은 없었죠?”
“항상 같이 있었지.”
방에 있었을 때도 윌리라는 증인이 있다. 증인이 윌리라는 것이 걸리지만, 마마가 윌리만 두고 어딜 나간다는 건 이때까지 우리가 본 바에 의하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저는 점심 전까지는 룸에 있다가 점심 후에도 3시까지는 방에 있었습니다. 3시에 저택 밖으로 나갔다가 2층의 가족 분들을 보게 돼서 같이 이야기 나누다가 산에서 돌아오는 아연씨와 아돌을 본겁니다. 룸으로 돌아오니 4시가 좀 안됐었죠. 6시에 내려가 식사를 한 다음 아연씨와 아돌과 휴게실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인분과 쉼터로 간 게 7시가 안된 시간이었을 겁니다.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 방에 들어와서 10시까지 있다 여기로 온 거죠.”
나의 행적을 상세히 밝힌다.
“방에 있던 시간들은 증명해줄 사람이 없으니 저도 알리바이가 없는 셈이네요. 아연씨 차례예요.”
“모두들 아시는 대로 산에서 아돌과 함께 캐츠씨를 기다리고 찾기도 하다가 저택에 온 시간이 3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죠. 들어오다가 이강씨와 2층 분들과 마당에서 만났고요. 방으로 들어와서 죽 있다가 식사시간에 내려와 식사를 마치고 그 이후의 행적은 이강씨와 같아요.”
이제는 아돌의 차례다.
“저는 죽 아연누나와 산에서도 있었고 저녁이후에는 쉼터에도 같이 있었어요. 모든 시간대의 제 행적은 누나와 같아서 달리 드릴 말씀이 없네요.”
부연 설명 없이 심플하게 끝낸다.
“방에서의 알리바이는 없겠지? 아연씨도요.”
“예.”
“저도 없어요.”
이렇게 휴게실에 모인 사람들의 행적을 확인하는 절차는 끝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알리바이 조사는 행해졌지만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어쩌죠? 정황상 여기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들인데요.”
“그렇겠군요. 분명히 여기 있는 모두가 생각하듯 그 두 명은 룸에서 나온 적이 없으니 알리바이 확인이 가장 불명확하죠. 거꾸로 판단하면 여태까지의 그 두 명의 상태로 볼 때 가장 혐의가 없기도 하지만요.”
주인 말대로 가장 가능성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의심이 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를 가진 두 사람이다.
“물어 본다고 해도 방에만 있었다고 할 것이고, 여러분들도 본 적이 없으니 그 말을 믿어야 할지, 안 믿어야 할지 모를 겁니다. 확인이 가능했던 사람은 식사를 가져다 준 종업원과 식사 후 그릇을 수거한 종업원뿐입니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도합 여섯 번이나 시간 간격을 두고 그 두 사람이 룸에 있는 것을 보게 되니까 어쩌면 그들의 알리바이가 가장 확실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매일 여섯 번이나 보게 되는 종업원들이 있으니 과연 가장 행적이 확실하구나. 그들이 여태까지의 룸에서 안 나오는 행동양식을 봐도 그렇다. 특히 클라인환자의 경우는 오랜 동안의 그런 경력이 확실하므로 가장 제외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온 날부터 칩거를 하고 있는 형이 조금 불리하기도 하지만 앞의 여섯 번의 확인을 고려하면 그도 제외해도 될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키 위해 그들의 행적을 조사한 것을 아연씨가 적어서 나중에 제대로 작성한 것이 다음의 표이다.
(표는 첨부파일로 대체)
괄호안의 이름은 본인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그 시간대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물음표는 본인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시간대의 증언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달아 놓은 것이다. 각자가 룸에 있던 때는 마마를 제외하고는 그 시간에 정말 룸 안에서만 있었는지 증명해줄 사람들이 없다.
“너무들 늦었으니 이제 그만 객실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다면 산에 가서 수색을 해 봅시다. 혹시라도 그 사이 돌아올지도 모르니 현관과 밖의 대문도 잠그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연씨는 빌려준 펜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적은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2층 식구와 주인이 나가고 셋이 남는다.
“적은 건 제가 잘 정리해 놓을게요.”
“그래요. 만일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지만 캐츠씨가 아무 일 없이 돌아왔으면 하네요.”
“누나가 갖고 있는 종이가 쓸모없이 버려진다면 좋겠어요.”
우리도 휴게실을 나가 룸으로 돌아간다.
“들어가서 푹 자도록 해요.”
“네. 내일도 아침부터 움직일 일도 각오해야하니 말이죠.”
“새벽에라도 돌아오길 바라야지요. 잘들 주무세요.”
나도 내 객실의 문을 열고 바로 침실로 들어간다. 양치질을 하고 잘까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상황을 정리해본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산재해 있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형을 찾아 구하는 것.
그것의 전제조건은 마땅히 형이 있는 곳을 먼저 알아내는 것. 그것과 관련해서 가지를 친 문제가 두 가지. 하나는 노크를 해서 문을 열게 하는 것이고 둘은 반원문제를 풀어서 도움을 받아 우리의 수색범위를 좁히는 것. 그리고 이것과 별개로 이 저택의 문제로서 캐츠씨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 정리하면
①노크를 해서 문을 열게 하는 것
②반원문제를 푸는 것
③캐츠씨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
현재 1번은 아돌의 탐색으로 알아낸 노크의 횟수로 내가 시도했으나 무위로 끝난 상태라서, 이것이 정말 노크의 신호에 연관된 것인지 재차 알아보기로 한 상태이다.
2번은 고뇌 끝에 짜낸 아이디어가 광명은 고사하고 허무감만 안겨줘 여러 가지 방법을 즉석에서 아돌이 내놓았으나 물 건너 간 상태.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도 중.
3번은 만약을 위해 서로의 알리바이를 조사 해놨고 내일 아침까지도 돌아오지 않으면 수색을 할 예정이다.
세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츠씨가 돌아오는 것이다. 다른 것은 그래도 아직 기한이 많고 그때까지는 확실히 해결해내고 말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캐츠씨 문제는 벌써 걱정이 되는 시점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의 신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이 없다는 확증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는 것이 활로를 여는 보탬이 되어줄지, 더욱 불안을 증폭시키는 촉매가 될지는 역시 시간이 흘러가야만 알 일이다.
생각을 접고 소설을 집는다. 아돌에게도 넘겨주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지만 오늘 독서는 이 정도로 끝내고 잠을 청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날은 이렇게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로 지나가고 다음날을 맞이한다.
새로이 알아낸 것과 추측사항
하프서클은 맨발로 그린 것이다
의문사항
3*2노크를 했는데 문을 왜 안 열까
캐츠씨는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산정상의 땅바닥에 SOS라고 새긴 건 누구이며 무슨 의미일까?
2009.03.14 18:02
[창작] 가려진 10분의2, 지워진 10분의2 그리고 10분의1 - 4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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